공연을 마친 무용수들은 흙과 땀으로 뒤범벅돼 있었다. 커튼콜이 몇 번이나 이어졌지만 서른 명이 넘는 무용수들의 얼굴에는 숙연한 표정만이 맴돌았다.
18∼21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독일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봄의 제전’과 ‘카페 뮐러’는 지난해 사망한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같은 안무가의 것이지만 두 작품은 서로 달랐다. 카페를 드나드는 인간군상을 형상화한 작품 ‘카페 뮐러’는 무용이라기보다 무언극에 가까웠다. 남녀 무용수가 무대 위를 배회하며 마치 즉흥처럼 느껴지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의자와 테이블을 치우는 소음, 헨리 퍼셀의 아리아, 감정에 따라 거칠어졌다 잦아드는 숨소리가 대사를 대신했다.
도미니크 메르시 예술감독은 19일 공연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무용수를 따라다니며 의자와 테이블을 치우는 남자는 안무 당시 맨 마지막에 추가된 아이디어로 원래 무대 디자이너가 맡은 역할이었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무용수 6명으로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여주는 ‘카페 뮐러’가 시라면 ‘봄의 제전’은 묘사가 풍부한 산문이었다. 검붉은 흙이 깔린 무대 위, 붉은색 천이 떨어져 있다. 누군가가 지게 될 희생의 운명을 상징한다. 바우슈는 1913년 니진스키의 첫 안무로 돌아가 원시적인 고대 제의로 ‘봄의 제전’을 재탄생시켰다. 동아일보 초청으로 1979년 한국 초연한 작품이지만 30여 년의 세월을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넘쳤다. 36명의 무용수는 흙 위를 뛰고 구르며 전력질주했다.
정반대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지만 두 공연 모두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카페 뮐러’는 외로움이나 공허를, ‘봄의 제전’은 적나라한 공포와 분노를 담았다. 무용수들은 격렬한 몸짓을 소화하면서도 섬세한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무용수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메르시 예술감독은 “(무용수들이 웃지 않은 것은) 물론 작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모두 나름대로 피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연은 원래 피나 바우슈 생전에 계획됐고 ‘카페 뮐러’에 바우슈가 직접 설 예정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본의 아니게’ 추모공연이 됐지만 바우슈의 양면을 보고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추모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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