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생 이만용(가명) 씨는 요즘 ‘G세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 주저앉는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또래 선수들이 척척 메달을 따며 성취감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 눈치가 슬슬 보이기 때문이다.
이씨의 가장 큰 걱정은 취업이다. 졸업 후 비정규직이나 인턴 자리라도 얻은 선배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벌써 몇 년째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취업 준비에 목을 매단 선배들도 주변에 널려 있다. 토익 900점, 어학연수 등 이른바 ‘스펙’을 높여야 그나마 바늘 구멍 같은 취업 기회도 엿볼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이씨는 스스로 ‘G세대’가 아닌 ‘GG세대’라고 부른다. ‘GG’는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에서 쓰이는 용어로 ‘기브 업 더 게임(Give up the game)’ 즉, ‘항복’이나 ‘기권’을 의미한다.
G세대의 어두운 그림자, ‘88만원 세대’.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G세대보다 몇 년 가량 위인 세대이다. 1980년대 초중반에 출생한 이들은 예민한 10대 시절 외환위기를 겪었다. 경제 침체는 구직난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들은 20대 비정규직자 계층을 형성하며 이 시대 짐이자 빚으로 남았다.
최근에는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여대생이 자퇴를 선언하며 붙인 대자보가 화제가 됐다. 그 글에는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라는 대목이 나온다.
‘88만원 세대’는 아예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르바이트생, 인턴, 청년실업자, 취업준비생, 단기취업자, 비정규직 등을 망라해 ‘88만원 세대’의 집단적 목소리를 처음으로 내기 시작했다.
17일 SBS는 ‘뉴스추적’에서 ‘44만원 세대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인 ‘88만원’은 고사하고 한 달 내내 고생하며 일해 얻는 돈이 채 50만원이 안 되는 10대들의 우울한 이야기였다. 이제 그 우울한 세대적 이면이 더 어린 층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마저 엿보인다.
이만용씨는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G세대는 윗세대가 갖지 못한 ‘삶을 긍적적으로, 즐기며 살기’라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개개인의 ‘스펙’으로 치자면 어느 세대보다 훨씬 강력하고 다양한 재능과 열정을 지닌 세대이기도 하다. 비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활개치며 일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88만원 세대’는 경제학자 우석훈 씨와 기자 출신 박권일 씨가 2007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저자들은 ‘88만원 세대’에 대해
비정규직에 종사하며 평균임금이 88만원에 불과한, 그래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청년 노동자들을 상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책이 출판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88만원 세대’는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직업시장을 떠돌아야 하는 20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