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은 왜] 레이디 가가의 이유 있는 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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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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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패션 감각과 기행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 지난해 내한 기자회견장에서도 파격적인 망사패션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 사진 더 보기
남다른 패션 감각과 기행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 지난해 내한 기자회견장에서도 파격적인 망사패션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 사진 더 보기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를 알몸에 두른 희한한 복장, 음료수 캔으로 돌돌 만 헤어스타일, 불붙은 담배를 이어 붙인 선글라스… 범상치 않은 차림의 여자 죄수가 수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

'나 좀 바쁘거든/그만 전화해/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내 손과 마음을 댄스 플로어에 놓고 왔는 걸'(노래 '텔레폰' 중에서)

미국 MTV조차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방영하지 않은 레이디 가가(24)의 '텔레폰' 뮤직비디오다. 교도소가 배경인 이 뮤직비디오는 동성애 폭력 노출 욕설 살인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죄수 역을 맡은 가가는 란제리룩과 파격적인 안무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앨범 수록곡인 '텔레폰'을 홍보한답시고 큰 전화기 모양으로 만든 헤어스타일을 선보인 그녀이니까. 그뿐인가. 콘서트 쫑파티에선 커다란 바다 가재 장신구를 머리에 이고 나오더니, 미국행 비행기에서는 온몸을 압박하는 '테이프 패션' 탓에 다리가 퉁퉁 부어 승무원이 옷을 벗기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한마디로 신들린 4차원 쇼맨십. 가가의 노래 '배드 로맨스' 속 범상치 않은 가사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I want your psycho(난 너의 정신병을 원해).'

▶ 가가,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레이디 가가. 천재일까, 괴짜일까. 정신 이상자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일까. 혹자는 이런 정체불명의 가가를 두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린다.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그랬다. 가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해 레이디 가가가 누군지 모르겠다.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구분이 안 된다"며 은근히 무시했다.

하지만 이제 아길레라도 가가의 존재를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2008년 첫 앨범 '페임(Fame)'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가가는 평단으로부터 실력까지 인정받았다. 2월 그래미상 수상에 이어 영국 브릿 어워드에서 최다 3관왕을 수상했다. 두 장의 앨범은 전 세계에서 800만 여 장, 싱글은 3500만 장 가까이 팔렸다.

데뷔 초 데이비드 보위, 프레디 머큐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을 역할모델로 삼던 가가는 이제 미래 팝의 왕좌를 넘보고 있는 셈. 마돈나도 "이제 가가를 보면 내가 보인다"며 그의 인기를 인정했을 정도다.

그러니 겉모습만으로 그를 재단하지 말 것. 가가의 성장환경과 예술 철학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예상이 다시 한 번 깨지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늘 예상을 빗나가는 가가의 기행(奇行)처럼 말이다.
지난해 제37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노래 '스피치리스'를 부르는 동안 마이크 스탠드로 유리를 깨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 더 보기
지난해 제37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노래 '스피치리스'를 부르는 동안 마이크 스탠드로 유리를 깨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 더 보기


▶ 가가, 학구적인 모범생이었다고?

본명은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 예상과 달리 가가는 1986년 3월 28일 외계가 아닌 지구에서 태어났다. 미국 뉴욕이 그의 고향.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가가는 네 살때 피아노를 배웠고 열세 살 때 작곡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작은 무대에 섰다.

믿기 힘들겠지만 가가는 맨해튼에 있는 사립 가톨릭 여자 학교(Convent of the Sacred Heart School)를 다녔다. 더 놀라운 건 호텔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동창이라는 사실.

가가는 당시 고교생 스테파니를 이렇게 기억했다. "복도에서 패리스 같은 애들과 마주치면 10초도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어요. 희생적이고 학구적이고 규칙을 따르지만 뭔가 불안정한, 그런 아이였죠."

예술을 공부하러 뉴욕대(Tisch school of the art)에 입학한 가가는 그 때부터 서서히 변했다. 클럽을 오가며 약에 취해 살았다. 진취적인 아버지조차 딸을 몇 달 동안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맨 정신으로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약을 끊었다.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한 가가는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제작자인 롭 푸사리를 만난다. 롭은 복도에서 마주쳤던 그의 노래를 듣고 퀸의 '라디오 가가'가 떠오른다며 '레이디 가가'라는 무대 이름을 지어줬다.

클럽가의 숨은 작곡가였던 스테파니는 이렇게 레이디 가가가 됐다. 예명을 지어주며 가가의 애인이 됐던 롭은 며칠 전 "가가가 자신을 이용하고 차버렸다"며 소송을 제기한 그 사람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레이디 가가의 쇼케이스 모습. ☞ 사진 더 보기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레이디 가가의 쇼케이스 모습. ☞ 사진 더 보기

▶ 가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니?

가가가 얌전히 앉아 시집을 읽는다?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았다. '비틀즈'의 존 레넌은 그의 영웅이고, 이탈리아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음악적 영감을 주는 그의 뮤즈다.

하룻밤 벼락 스타도 기획사가 만들어낸 팬시상품도 아닌 가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기상천외한 패션도 치밀한 계산의 산물. 하다못해 갈색 머리인 그가 금발머리를 고수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가가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영국의 팝가수)와 구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곡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가가는 무대에서 입고 싶은 의상을 상상한다. '가가의 집(the House of Gaga)'이라고 불리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 팀은 가가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무대 이미지 등 모든 것을 창조하는 드림팀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패션은 가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원칙이 된다. 번 돈은 모두 무대와 의상에 쏟아 붓는다는 그는 "하이힐을 신고 있지 않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 가가, 끊임없이 도발하는 까닭은?


가가도 항상 행복할 수 없는 법이다. 앨범 재킷 속 모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그는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감정적인 싸움을 벌인다"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남편과 가정을 가진 평범한 여자를 꿈꾼다고 말해 팬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가가의 책(Book of Gaga)'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

"나는 항상 제 3자의 시선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요. '남들이 사는 방식으로 내 인생을 살지는 않을 거야'. 나는 오로지 일과 팬들에 봉사하기 위해 오롯이 내 인생을 살죠. 나의 팬들은 자신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최면을 걸어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물론 그가 건 최면에 팬들이 넘어갈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가가는 말한다. "주제 넘는 말일지 모르지만 나의 목표는 팝음악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마돈나의 데뷔나이는 스물 넷. 가가는 아직 운전면허도 따지 않은 스물네 살이니, 기대해볼 일이다.



염희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salthj@donga.com





▲동영상=아이폰녀 이번엔 레이디가가의 `포커페이스(Poke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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