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정과 인심이 흐르는 풍경 소문난 막걸리집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막걸리기행/정은숙 지음/352쪽·1만3500원·한국방송출판
일본에서 먼저 각광받았고 최근 한국에서도 ‘트렌드’로 떠오른 술, 막걸리다. 이 책 역시 2007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돼 일본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가 직접 일본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그간 바뀐 내용을 보충한 책이다. 전국 팔도를 다니며 지역 특유의 막걸리와 대폿집, 전통 있는 양조장을 샅샅이 훑어 ‘전국 막걸리지도’를 그렸다.

충북 진천군에는 1929년에 세워진 ‘세왕주조’가 있다. 덕산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창업 당시 건물을 그대로 유지해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호)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실내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해 왕겨를 가득 넣은 벽, 자연원리를 이용한 환기시설 등에 옛 사람들의 지혜가 살아있다. 온도를 스스로 유지하고 숨을 쉬는 옹기 술독 역시 맛 좋은 막걸리 탄생의 비결이다.

조상들의 지혜로 탄생한 막걸리에 시골 특유의 인심과 정이 결합한 곳이 바로 대폿집이다. 좁고 시끌벅적한 시골 대폿집은 손님이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막걸리에 맞는 안주를 내온다. 전북 김제시의 ‘정화집’ 주인아주머니는 저자에게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닌’ 말고기 갈비를 내온다. 부화되기 전에 곯아버린 달걀을 삶은 ‘사롱란’까지 등장한다. 김치찌개, 도루묵구이, 순대, 홍어삼합…. 한국식 밥상에 가장 잘 맞는 술이 바로 막걸리다.

막걸리가 지금처럼 유행하는 데 ‘술맛’과 ‘음식’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1970년대 개별 포장된 막걸리는 탄산가스가 폭발하는 일이 잦았다. 그 뒤 알루미늄 마개를 사용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야 마개 안쪽에 부직포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넘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각 지역의 막걸리를 한 장소에서 마신다는 아이디어 역시 한 재일동포의 ‘막걸리바’에서 출발했다.

‘광교집, 막걸리/물렁한 비닐병을/흔들어 깨운 오후/뽀오얀 젖빛바다/목 넘어 흐르는데…’

전북 정읍시의 대폿집 ‘광교집’에 걸려있는 시구다. 서예가인 단골손님이 시화로 선물한 ‘막걸리 찬가’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의 막걸리는 사람 냄새 나는, 정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책 첫머리, 저자의 당부 역시 이런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막걸리 붐을 타고 대기업 주조회사까지 막걸리 생산에 참여한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는데, 이 책을 펼친 분들만큼이라도 묵묵히 긴 세월 동안 막걸리를 빚어 온 지역 중소 양조장 막걸리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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