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위기를 기회로… 더 넓은 세상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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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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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열전/이수광 지음/375쪽·1만3900원·진명출판사

이 땅의 상인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서열의식 맨 밑에 위치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역사서엔 이름 석자 정도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고려 말 행상으로 시작해 조선 창업의 돈줄이 된 ‘부보상의 아버지’ 백달원부터 500만 원짜리 인터넷 의류쇼핑몰을 1년 만에 연매출 100억 원대 기업으로 바꾼 김소희 씨까지 20명의 성공 스토리가 담겼다.

익숙한 이름도 있다. 인삼 장사로 조선 최고 거부가 된 임상옥과 제주 관기 출신으로 큰돈을 모은 김만덕, 중국 여인에게 새 삶을 열어준 인연으로 거부가 된 역관 홍순언, 소 판 돈을 들고 가출해 대한민국 최고 기업가가 된 정주영…. 그래도 아직은 낯선 이가 더 많다. 짝사랑했던 기생에게 받은 모멸을 갚기 위해 소금 장수로 거부가 된 김두원, 수백 마리 소를 몰고 조선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부자가 되 최봉준, 러시아 상선을 타고 세계를 떠돌며 익힌 견문으로 큰 재산을 모아 최봉준과 더불어 연해주 독립운동의 양대 젖줄이 된 최재형, 기차 안에서 청산유수의 말솜씨로 제조한 약을 직접 선전하면서 약 광고의 효시를 연 이경봉….

상인이란 말은 중국 고대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뒤 중국 전역을 떠돌게 된 상나라 사람에 장사꾼을 비견하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실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크 아탈리가 말한 ‘호모 노마드’의 속성을 공유한다.

한곳에 뿌리 내리기에 너무 가진 게 없었다. 그래도 주어진 삶에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나섰다.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위기를 기회로 바라봤다. 재물보다 사람을 귀히 여겼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훗날의 인연을 중시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말한 영웅의 조건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다. 돈으로 인한 영욕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이다. 해당 인물의 공(功)에만 초점을 맞춰 과(過)는 제대로 짚지 못했다. 성공한 상인의 비결보다 훌륭한 상인의 조건에 좀 더 천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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