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세상이 다 그래? … 무대는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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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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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유형지’ ‘검둥이들’

무대 ★★★★ 연출★★★☆
연기 ★★★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유형지를 무대로 죄수와 간수의 역설적 권력관계를 그린 ‘유형지’(위)와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와 현실화할 때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 편견의 허구성을 폭로한 ‘검둥이들’. 사진 제공 연극집단 뮈토스·극단 창파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유형지를 무대로 죄수와 간수의 역설적 권력관계를 그린 ‘유형지’(위)와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와 현실화할 때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 편견의 허구성을 폭로한 ‘검둥이들’. 사진 제공 연극집단 뮈토스·극단 창파
극장은 배우의 집이다. 관객은 그 집의 손님이다. 그래서 관객은 편안한 상석에 앉고 배우는 무대 위에서 그를 접대한다. 지난 2주간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선 이를 뒤집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벌어졌다. 프랑스 출신 극작가 장 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된 ‘유형지’(18∼21일)와 ‘검둥이들’(24∼28일)이었다.

주네의 미완성작을 복원한 연극집단 뮈토스의 ‘유형지’(연출 오경숙)는 아예 입장할 때부터 관객을 죄수 취급했다. 흑인 저격수로 분장한 배우들이 극장 입구부터 관객을 일렬로 줄 세우고 목에다 죄수 신분증을 걸게 한 뒤 어둠 속에서 객석을 통과해 무대 양옆에 설치한 철제의자에 앉도록 했다. 지시는 명령어가 적힌 팻말이 대신했다.

연극은 ‘빠삐용’의 무대인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카이엔을 모델로 북아프리카 사막에 세워진 가공의 유형지에서 펼쳐지는 죄수와 간수의 권력암투를 몽환적으로 다뤘다. 간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유형지 외곽을 지키는 흑인 저격수와 죄수를 밀착 감시하는 백인 간수다.

흑인 저격수들은 관객들 머리 위에 설치된 가설무대 위에서 총을 겨눴고 객석 2층에서도 플래시 불빛을 쏘며 위협했다. 백인 간수들은 무대 아래 지하감옥과 사막의 태양이 작열하는 무대 위 마당을 오가며 죄수를 겁주고 폭행했다. 넓은 1층 객석은 교도소장과 부소장, 사제가 차지했다. 그들은 유형지를 탈출하려다 총살당한 사냥감(죄수)의 대형사진을 걸어 놓고 신입 죄수를 협박했다.

배우는 객석-관객은 무대에
주객전도로 기성질서 비판
시적 대사 전달미흡 아쉬워

2시간 40분간 불편한 의자에 앉아 쇠창살 틈으로 무대 아래 죄수들을 훔쳐봐야 하는 관객은 결국 신입 죄수와 같은 신세다. 그들은 처음엔 흉악하고 비열한 죄수들의 추악한 행각에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신입 죄수 포르라노가 무고하게 처형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권력의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악마적 본성에 더 강렬한 반감을 갖게 된다.

극단 창파의 ‘검둥이들’(연출 채승훈)에서도 관객은 무대 위에 마련된 객석에 앉는다. 하지만 그 위치는 ‘유형지’에서 피해자(죄수)의 것이 아니었다. 가해자(백인)도 피해자(흑인)도 아닌 관찰자의 위치였다.

넓은 객석은 백인 남녀 단 두 명이 차지한다. 거들먹거리며 공연을 지켜보는 그들에게는 공연 내내 환한 조명이 쏟아진다. 무대 위는 흑인들 차지다. 그들은 둘로 나뉜다. 연극 공연 때 필요한 시체를 마련하기 위해 백인 여성을 살해한 과정을 재연하는 흑인 배우들과 그들의 범행을 심판하는 여왕과 총독, 판사, 선교사 등의 백인 가면을 쓴 흑인이다.

극중극의 내용은 ‘검다’는 것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냄새나고 더럽고 사악한 무엇. 흑인 배우들은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투사한 그 이미지를 극악무도하게 끌어올리면서 백인이 앉은 객석과 무대의 거리를 극대화하는 역할놀이를 펼친다. 흑인을 멍청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희화화해 19세기에 유행했던 미국의 민스트럴쇼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하지만 관객은 흑인들의 연기뿐 아니라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극장 안팎에서 닮은꼴 사건이 동시에 진행됨을 깨닫는다. 무대 위에선 잔혹한 범죄자로서 흑인들이 백인을 살육하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밖에선 ‘검둥이를 검둥이답게 하라’는 모종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극장 안에서 백인의 쾌락을 위해 조장된 허구의 폭력이 극장 밖에선 흑인의 노예적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이성과 교양이란 이름으로 서구 부르주아 사회가 은폐한 폭력과 억압을 고발한 주네의 도발적 체취를 한껏 맡게 해줬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특히 객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주객전도의 무대연출은 원작이 지닌 불편함과 거북함을 관객이 체화하는 데 특히 기여했다. 하지만 극장 전체가 무대화하면서 반어와 상징이 가득한 주네의 시적인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부작용은 못내 아쉬웠다. 초연 무대를 능가할 후속작업을 기대해본다. 미셸 푸코의 철학을 극예술로 끌어올린 듯한 장 주네 탄생 100주년 페스티벌은 6월 6일까지 계속된다. 02-764-760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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