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서울도서전 또 반쪽 위기… ‘출판 공공성’ 잊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이 5월 12∼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책과 통하는 미래, 미래와 통화는 책’이 주제다. 서울도서전은 1954년 시작해 1995년부터 국제도서전으로 격상돼 올해로 16회를 맞았다. 올해 주빈국은 프랑스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마르크 레비 등 유명 작가들도 방한할 예정이다.

서울국제도서전 조직위원회는 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판인들의 축제’라는 서울국제도서전 개최 계획을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준비 상황은 우려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도서전 개최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1차 참가신청 마감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참가 의사를 밝힌 단행본 출판사는 19곳에 불과하다. 조직위는 단행본 출판사의 폭넓은 참여를 위해 100여 곳의 자리를 마련해둔 상태다. 단행본 출판사는 학습교재, 잡지, 아동도서, 전집류가 아니라 독자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문학 인문 사회과학 교양물을 내놓는 출판사다.

조직위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단행본과 전집출판사 등 국내 350여 출판사를 비롯해 20개국 595개 출판사가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유명 단행본 출판사의 도서전 참여는 작년에도 ‘화제’였다. 불황 등을 이유로 민음사 한길사 창비 등의 ‘간판’격 출판사들이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직위가 앞으로 열흘가량 대형출판사를 개별 접촉해 도서전 참여를 ‘부탁’할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단행본 출판사의 참가 여부가 도서전의 주요 사안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도서전을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간의 알력 때문이라는 것은 출판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단행본 출판사 중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도서전을 ‘할인 장터’처럼 운영함으로써 격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단행본 출판사들이 한국 출판문화의 수준과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도서전에는 나오지 않고 개별 회사의 이익만 밝힌다고 반박한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작년 말 도서전 조직위를 구성할 때부터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출판인회의 한철희 회장은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 행사”라며 “참여 여부는 회원사인 개별 출판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두 단체의 싸움에 독자들은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전이 제대로 열릴 것인지 여부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참가 여부는 출판사의 자유다. 그러나 도서시장은 시장논리가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펴온 쪽은 출판계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신경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책의 공공성을 내세우며 도서정가제 유지 등의 지원을 사회와 정부에 요청할 때처럼 합심해야 한다.

출판계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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