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2mm 삐딱한 디자인… 연예인들 사로잡고 입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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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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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전문숍 ‘카오리’ 대표 이형렬 디자이너


《언젠가부터 국내에서 멋깨나 낸다는 사람들로부터 ‘카오리’란 말을 종종 듣게 됐다. 알고 보니 카오리(kAoRi)는 일본어로 ‘향기’란 뜻의 모자 전문 숍이었다. 모자 디자이너 이형렬 씨(37)는 중앙대 의류학과와 일본 도쿄 문화복장학원 패션공예과(모자 전공)를 나와 2004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카오리를 열었다. “모자가 패션과 조화를 이루면 도시에 향기가 날 것 같거든요.” 모자 패션이 척박한 한국에서 모자 디자이너, 모자 전문 숍이라니.》

○비대칭과 입체 패턴의 힘

지난달 25일 ‘카오리’에 들어선 기자는 “야아”란 감탄을 절로 내뱉었다.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代官山)의 유명 모자 숍 ‘카시라’(CA4LA)의 개성 넘치는 모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머리 위 예술 오브제들…. 헌팅캡, 챙이 넓은 해트(hat), 야구 모자 스타일의 캡(cap)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자는 이 씨 특유의 수제(手製)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야구 모자도 뭔가 달랐다. 작은 조각 천들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 기법으로 마치 퀼트 작품 같았다.

그가 만든 헌팅캡을 쓰면 뒤태가 봉긋 솟아 전체 얼굴 라인을 부드럽게 정리해준다. 왜일까. 비결은 모자 뒤쪽의 고무 밴드였다. 뒤쪽을 탱탱하게 잡아주자 두상 전체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카스캐트(프랑스어로 챙 달린 모자)는 마네킹 두상에 직접 천을 대고 입체 패턴을 하기 때문에 주름이 자연스럽게 잡혀 있었다.

이날 이 씨는 흰색 셔츠에 헐렁한 배기팬츠, 검은색 스니커즈와 헌팅캡 차림이었다. “아, 이 모자요?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도 즐겨 쓰는 모자예요. 검은색 헌팅캡은 남녀노소 두루 잘 어울려요. 세미 정장뿐 아니라 레드카펫 위에서 드레스에 매치해도 멋스럽습니다.”

이 씨가 매장 안쪽에 딸린 작업실에서 만드는 모자의 가장 큰 특징은 비대칭 디자인이다. 오른쪽과 왼쪽 천 길이를 2mm 정도 다르게 하는 이 디자인은 어떤 각도와 방향으로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스타일을 가능케 한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교과서에 나온 말이 있었어요. 모자는 배우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제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창의적 스타일을 스스로 찾아가며 모자에 정을 붙였으면 좋겠어요.” 일본 언론에 카오리가 자주 소개된지라 인터뷰 도중에도 일본 여성들이 삼삼오오 몇 차례나 둘러보고 갔다.

○스타들로부터 배우는 모자 코디법

흔히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고 하는데 머리 위에 얹는 모자는 패션의 ‘플러스알파’다. 스타일에 깐깐한 유명 연예인과 모델들이 이곳을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모자를 사 가는 이유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장근석은 앞부분이 늘어지는 헐렁한 검은색 티셔츠에 카카오색 카디건과 긴 검은색 재킷을 걸쳐 입고 ‘카오리’ 모자를 썼다. 모자 꼭대기 부분(크라운·crown)이 산처럼 높으면서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가 다른, 마법사 같은 독창적 디자인이다. 어깨까지 늘어지는 긴 머리를 웨이브 파마한 당시 장근석의 헤어스타일과 장난기 어린 표정이 이 모자와 참 잘 어울렸다.

마침 이 모자가 매장에 있어 눌러 써보니 마음에 들었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이 모자를 쓰고 동네방네 다니면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겠지.’ 그럼 어떤가. 어차피 패션은 자기만족인데. 곁에서 함께 거울을 보던 이 씨도 거들었다. “제 모자는 남녀 구분이 없어요. 그저 자신감 있게 쓰면 됩니다.”

지난해 서울패션위크 때 회색 정장에 빨간색 페도라(챙이 짧은 중절모)로 강렬한 ‘패션의 방점’을 찍은 멋쟁이 배우 류승범, 올봄 유행 아이템으로 떠오른 카키색 셔츠 스타일 재킷에 체크무늬 헌팅캡을 눌러 쓴 배우 신민아,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검은색 헌팅캡을 비스듬히 내려 써 ‘팜파탈’ 매력을 발산한 배우 손예진 등 ‘카오리’ 팬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한국에도 모자 유행시대 곧 온다”

그는 2004년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50만 원의 작은 점포를 얻어 처음 카오리를 열었다. 국내에 패션 학도는 매년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모자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예나 지금이나 드물다. 유독 모자를 두려워하는 한국인 정서 탓에 시장이 작아서다. 그래도 패션 피플은 그의 모자를 알아봤다. 이 씨는 2006년과 2007년엔 국내 유명 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우영미 씨의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 패션쇼에도 참여했다. 이 씨는 두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넓은 가게로 옮길 수 있었다.

지난달 10일∼이달 5일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공예관에서 ‘솔기의 마술(Magic of seam)…이형렬 개인전’도 열리고 있다. 이 씨와 카오리에 대한 입소문을 들은 가나아트센터 측의 제안으로 이뤄진 전시다. 가나아트 측은 이 씨의 모자 60여 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왕이 왕관을 쓰듯 모자는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그 발전의 단계를 지나왔다. 현대인은 모자를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이용한다. 평범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번 이형렬 작가의 모자 전시는 대중의 구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세심한 디테일과 독특한 실루엣, 다양한 소재와 패턴의 변화로 디자인된 그의 모자는 현대인의 감성을 충족시켜 준다.’

그의 도전은 쉼이 없다. 이달 20일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카오리 with 이미숙’이란 모자 전문 매장을 낸다. 유명 배우 이미숙 씨는 이 씨의 사촌누나다. 이미숙 씨는 이형렬 씨가 만든 깃털 장식의 화려한 모자를 쓰고 국내 패션잡지 ‘바자’의 패션화보를 찍기도 했다. 붉은색 립스틱과 어우러진 ‘카오리’ 모자의 패션 아우라는 강렬했다.

“롯데백화점에서 패션 소품을 강화하기 위해 입점하라고 제안하더군요. 누나(이미숙 씨)가 모자와 골프를 좋아하기 때문에 골프 모자 디자인에 참여했어요. 전체 상품 중 20%를 골프 모자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필드 위에서 천편일률적인 골프 모자가 그동안 영 못마땅했거든요. 지켜보십시오. 향후 5년 내 국내에서도 모자가 유행할 겁니다.”

이 남자. 그의 포부처럼 왠지 이 도시에 모자 향기(카오리)를 피워낼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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