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사진이 꼭 진짜같을 필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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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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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 기억이란 주제를 각기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공사 가림막과 건물 외벽의 벽화를 주제로 선택한 한성필 씨(38)의 ‘In Between Lyers’전, 낭만주의 화가들이 풍경을 그린 장소를 찾아가 촬영한 대런 아몬드 씨(39)의 작품전, 생각 속 이미지를 정교한 모형으로 만든 뒤 사진을 찍은 이문호 씨(40)의 ‘Contemplation’전.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함정과 착각을 일깨우는 사진을 만나는 자리다. 실재와 재현의 미묘한 경계를 파고든 작가들은 사진뿐 아니라 이와 밀접하게 연결된 영상이나 설치작품을 선보여 풍성한 전시를 구성했다.》

한성필 - 어디까지 실제 건물이고, 어디서부터 그림인지 헷갈린다.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뒤덮은 공사 가림막. 열린 커튼 틈새로 마그리트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고 가림막 속 가로등과 거리의 가로등은 똑같은 모양이다. 화재로 피해를 입은 남대문의 웅장한 가림막은 사라진 실재와 현실 속 가상 이미지 사이에 응축된 사건과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선 그가 2년간 유럽의 여러 도시와 국내에서 진행한 작업의 결과를 보여준다. 공사현장을 감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가림막, 건물의 일부로 자리잡은 벽화를 찍은 사진에서는 실재와 가상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현실과 허구, 실재와 재현이 구분되지 않은 모호함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난해 월간지 ‘공간’의 500호를 기념해 ‘공간’ 사옥에 건물 내부 사진을 결합한 대형 현수막을 설치한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외벽을 뜯어낸 양 건물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설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건물을 감싼 거대한 가림막이 바로 그의 작품. 5월 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 02-323-4155
대런 아몬드 - 2005년 터너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가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 선보인 ‘Fullmoon’ 시리즈에는 시적 정서와 동양적 감수성이 스며 있다. 작가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윌리엄 터너 등 유럽 화가들의 풍경화를 그렸던 장소를 찾아서 15분 이상 긴 노출로 달빛 아래 풍경을 잡아냈다. 고요한 사진 속에서 시간과 빛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개인의 고통스러운 여정에 초점을 맞춘 영상작품도 인상적이다. 마라톤 선수처럼 쉼 없이 산을 달리며 수행하는 일본 교토의 가이호교 승려(‘마라톤 몽크’)나 화산 분화구에서 유황을 캐는 인도네시아 광부의 모습(‘Bearing’)은 고단한 삶을 연상시키고, 작가 스스로 30분간 아파트를 뛰어다니며 촬영한 영상은 생각없이 흘려보낸 시간을 일깨운다. 4월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 02-515-9496
이문호 - 빽빽한 고층건물과 복잡한 계단으로 이어진 건물은 현실 공간인가 가상공간인가. 사진 속 이미지는 눈에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어색하다. 홍익대 조소과를 거쳐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뮌스터에서 유학한 작가는 모형과 사진작업으로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탐색하며 새로운 미적 경험을 유도한다. 그는 가벼운 재료를 사용해 공들여 모형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다. 현실과 닮긴 했지만 그 이미지는 너무도 무표정해서 초현실적 공간으로 느껴진다.

전시장에 설치된 모형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작가의 노고를 떠올리게 한다.

4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갤러리. 02-708-501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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