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아동 매춘과 성학대 등을 고발한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 씨(74)의 소설 ‘어둠의 아이들’이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연출한 같은 이름의 영화도 국내 개봉했으며 다음 주 중 문학평론집 ‘아시아적 신체’도 번역 출간된다.
이를 계기로 내한한 양 씨를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만났다. 그는 연세대에서 아시아 국가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폭력을 주제로 강연했다. 양 씨는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던 유미리 씨와 함께 현재 활동 중인 대표적인 재일작가다. 그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색다르다. 영화 개봉과 함께 책도 출판돼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좀 더 잘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 씨는 마흔이 넘어 뒤늦게 등단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미술 인쇄업자, 택시운전사 등 여러 일을 했다. 택시 운전 경험을 바탕으로 재일 조선인의 디아스포라(이산·離散)를 그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데뷔한 뒤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이중성 문제를 다룬 ‘피와 뼈’ 등을 펴냈다. 그의 작품들은 잇따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 군사정권과 이후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담은 ‘자유에의 의지’ ‘쌍두의 독수리’ 등도 썼다.
등단작에서 알 수 있듯이 재일 작가라는 정체성이 사회의 어두운 차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재일 작가가 느끼고 있는 문제가 비단 재일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일 작가여서 한국이 잘 보입니다. 물론 일본의 상황도 일본인보다 더 잘 보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차별과 어둠의 세계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출발해 아시아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동포뿐 아니라 어느 인종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일정한 테두리를 쳐두고 이것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넘지 않는 이들은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테두리라는 것은 국가, 권력, 인종, 이데올로기 모두를 포함한다.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군부 탄압 등 동아시아에서 신체를 중심으로 자행된 국가적, 사회적 폭력과 차별을 그는 ‘아시아적 신체’라는 특유의 개념으로 명명한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아시아 민중의 삶은 30여 년간 일관된 그의 문학적 테마였다.
‘어둠의 아이들’은 태국을 배경으로 아동 매춘과 학대, 불법 장기 적출 등의 참혹한 범죄 실상을 다뤘다. 참혹한 현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는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이 책은 ‘19세 미만 구독 불가’로 판매된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대해 그는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잔혹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면이 잔혹합니까. 저는 잔혹한 것을 쓴 적이 없습니다.”
“사건의 실상을 읽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쓰지 않으면 소설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저는 헨리 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받은 거대한 충격 때문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일부는 그 소설을 ‘외설적’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읽은 뒤 나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거침없이, 무엇이든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로서 내게 ‘검열’이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고발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쓰고 싶은 것을 쓸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다큐멘터리나 르포르타주 식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동시대의 여러 사회 문제를 자연스레 각성시킨다. 그는 “일본에서는 ‘어둠의 아이들’ 이후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참여하는 독자들이 생기기도 했고 현재 연재 중인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고 관련 단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며 “(소설을 읽고) 그런 활동이 느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빛과 어둠’의 문제입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겐 빛 속의 사람들이 아주 잘 보입니다. 하지만 빛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요. 정부, 기업가, 부자들, 권력자, 그리고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