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잘 찍으려면 잘 느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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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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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배병우-팬 ‘특별한 나들이’

“날씨-빛의 움직임 포착해 작업
선인들 마음으로 감상하듯
실내 들어가 밖을 보면 새 풍경”

사진작가 배병우 서울예대 교수와 그의 팬들이 3일 창덕궁을 찾아 옛 건축과 사진의 매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창덕궁 낙선재 장락문 앞에서 매화를 찍기 위해 참가자들과 함께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배 교수(가운데). 이광표 기자
사진작가 배병우 서울예대 교수와 그의 팬들이 3일 창덕궁을 찾아 옛 건축과 사진의 매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창덕궁 낙선재 장락문 앞에서 매화를 찍기 위해 참가자들과 함께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배 교수(가운데). 이광표 기자

“날씨가 너무 좋아요. 올 들어 베스트입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카메라를 둘러멘 20여 명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3일 오전 10시, 창덕궁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에 다다랐을 때다. 20여 명은 모두 ‘사진작가 배병우와 함께 창덕궁을 만나다’라고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날 행사는 인기 사진작가 배병우 서울예대 교수(60)와의 특별한 나들이였다. 배 교수의 사진집 ‘창덕궁’의 독자와 문화유산지킴이 시민단체 ‘ㅱ름지기’ 회원 등 20여 명이 참가했다. 20대 회사원부터 초로의 60대 여성까지 연령과 직업은 다양했다.

인정전에 들어서자 참가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배 선생님처럼 찍을 수 있나요?”

“창덕궁에 몇 번을 와도 그런 앵글이 안 나오던데….”

배 교수로부터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느낌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날씨를 잘 맞춰야 합니다. 오늘은 색깔이 참 좋군요.”

그의 말에 참가자들은 저마다 인정전 앞에서 이리저리 각도를 재고 앵글을 맞춰가며 자신의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인정전 앞에서 다 같이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매화가 한창인 낙선재를 거쳐 후원의 부용지로 넘어갔다.

동행한 건축사학자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고개를 넘어서면 눈앞에 부용지가 시원하게 쫙 펼쳐지지요. 이게 창덕궁 후원과 부용지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

참가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면서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울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부용지의 사계를 모두 찍은 배 교수의 사진은 그의 창덕궁 사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사진집을 펼쳐 보이며 설명을 했다.

“제가 창덕궁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것이 1990년쯤이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이곳은 봄 여름 가을이 다 좋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것 같아 또 좋아요. 보통 동 트기 전 새벽에 창덕궁을 찾아서 빛의 움직임을 포착해 사진을 찍습니다.”

빛과 날씨의 중요함,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한 말이다.

“오늘은 날씨는 좋은데 초록이 덜해 좀 아쉽네요. 2주쯤 지나면 색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초록이 덜하다는 말에 참가자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배 교수는 “바로 앞의 영화당 복도에서 보면 부용지 전망이 참 좋다”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부용지를 야외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건물 안에서 옛사람의 마음으로 감상하라는 의미였다. 설명을 듣던 회사원 윤용로 씨의 말.

“배 선생님의 눈을 통해 제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니 너무 좋습니다. 배 선생님의 창덕궁 사진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매력을 찾아 우리에게 돌려주는 것 같습니다.”

나들이는 옥류천으로 이어져 2시간 동안 계속됐다. 촬영 기법에 관한 대화는 별로 없었다. ‘창덕궁을 어떻게 잘 찍을 것인가’보다 ‘창덕궁을 어떻게 잘 느낄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창덕궁의 나무와 건물 하나하나가 달리 보였습니다.”(회사원 이연희 씨)

이날 창덕궁 나들이는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오후에 한 차례 더 열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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