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가수들의 노래가 밋밋하다 못해 심심하기조차 하다. 둘째, 멜로디가 단조로운 데다 툭하면 같은 선율을 반복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셋째,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넷째,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가수들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말 것. 용맹하고 잔인한 적장 홀로페르네스마저 메조 소프라노 가수가 담당한다.
‘왜 그런가?’라고 물으면 ‘바로크오페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바로크시대에는 이런 오페라가 대세였고, 지금 우리는 바로크의 음악적 현장에서 바로크의 예술적 영혼을 들이마시기 위해 공연장을 찾으려는 것이니까.
5일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국내 초연된 ‘유디트의 승리’는 ‘사계’로 전 세계 클래식 음반계를 평정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작품이다. ‘사계’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간과하기 쉬운 점은 바로 비발디의 본업이 카톨릭 사제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별명은 ‘빨간머리의 사제’였다. 그런 비발디가 구약성서 외전 ‘유디트서’를 소재로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점은 놀라울 게 없다.
앗시리아 군대에 포위된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진에 들어가 치명적인 매력으로 적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그가 술 취한 틈을 타 목을 잘라 죽이고 결국 마을을 구했다는 여인의 이야기.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논개와 비슷하다.
베네치아의 고아원에서 합창지휘와 작곡을 하던 비발디는 이곳에서 ‘유디트의 승리’를 썼다. 엄밀히 말하면 오페라가 아니라 오라토리오(종교적 극음악. 연기, 무대장치없이 노래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이다. 당시 이 고아원이 여자아이들만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디트의 승리’가 초연됐을 때는 소녀들이 배역을 맡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바로크 시대에는 여성 가수가 남성 역을 맡는 일이 흔했다. 당시 관객에게는 배역의 현실성보다 고난도의 기교와 고음을 내는 가수가 더 중시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유디트(티치아나 카라로), 홀로페르네스(메리 엘린 네시)의 노래는 기름기를 쪽 빼낸 듯 담백하게 울렸다. 처음에는 밋밋하다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맛이 뒤끝에 남는다. 뜻은 자막에 의존해야 했지만 생소한 라틴어 가사 발음 역시 신선하게 들렸다.
‘유디트의 승리’에서는 그 흔한 이중창도 없다.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 상대는 가만히 서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연기 역시 절제되어 컷 전환이 빠른 영상물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하염없이 느리게 각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편의 오래된 오페라는 21세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부산한 움직임이 없으니 시선을 집중하기 쉽고, 선율이 반복되니 머릿속에 오래 머문다.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품격있는 반주에도 한 표!
극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관객들은 막이 내려가자 뜨거운 박수로 연주자들의 노고에 보답했다. 특히 홀로페르네스의 심복이자 내시인 바고아 역을 맡은 소프라노 지아친타 니코트라에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낯설지만, 한국관객들에게 바로크 음악의 절제된 미학을 소개해 준 ‘유디트의 승리’. 이날 공연은 가수와 연주자, 관객 모두가 승자였다. ‘유디트의 승리’는 7일까지 사흘간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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