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는 방’ 혹은 ‘잠만 자실 분’. 대학가 하숙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이다. 하숙방은 식사와 경우에 따라서는 빨래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 방은 말 그대로 일체의 기타 서비스가 없다는 뜻이다. 그 대신 방 값이 일반 하숙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갓 제대한 휴학생 오영대가 발견한 것도 이 전단이다. 착하기는 한없이 착하고 순해 빠지기론 비교할 데가 없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의 꿈도 목표도 없는 어수룩한 청년.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아, 예”라고 시작하는 순박한 인간. 그는 인생 최초로 독립선언을 하며 이 방을 선택한다. 다리를 쭉 뻗고 자기도 힘들 만큼 좁은 방 안에서 그는 이전에 살던 누군가가 남기고 간 노트를 발견한다. 대학 진학 때문에 바닷가 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역시 하숙방과 자취방을 전전해야 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다.
소설은 영대의 일상과 노트 속 지영의 삶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서울 곳곳의 후미진 방들을 전전하며 꿈꾸고 좌절하는 이 시대 20대의 삶을 보여준다. 뚜렷한 서사나 이렇다 할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대와 지영을 중심으로 주변에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의 애환과 고민, 방황과 성장기를 소소하게 버무렸다. 이들의 삶이란 것 자체가 충격적인 사건도 사고도 없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이야기 역시 비교적 단조롭게 흘러간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영대가 ‘이게 무슨 소린가. 평생 오빠로 남아달라니. 그럼 애초에 가족으로 태어나든가’라고 읊조리는 대목처럼 이 작가 특유의 유머가 발하는 부분들이 재미를 더한다.
사춘기와 함께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웬걸, 20대의 방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때때로 조악하고 치기 어리지만 그래서 더 꿈 많고 괴롭고 설레는 시절. 빈곤하고 비루한 청춘의 땀 냄새가 흠씬하다. ‘서울 동굴 가이드’를 펴냈던 김미월 작가의 첫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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