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일곱 명의 사내가 있다. 한때 세상을 구하리라는 영웅심리에 빠져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주인공이나 된 듯 설쳤던 사내들이다. 하지만 머리가 희끗해지고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그때의 사건’을 되돌아보려니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진다.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이들은 마치 오래된 숙제를 하듯 38년 전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 그때 그 사건을 고등학교 홈커밍데이에 공개할 연극작품으로 준비한다.
그 사건이란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됐을 때 고교생 신분으로 이를 비판한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된 뒤 풀려난 것이다. 반성문을 쓰고 한 달 만에 풀려난 그들은 도망치듯 현실과 타협해 대기업 임원과 대학교수, 학원 원장, 신부로 번듯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각자 38년 전 구치소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느낀다.
연극은 그런 그들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섯 명의 친구는 그것이 사건 이후 정신질환을 앓는 종태(권혁풍)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는 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기억의 한복판에는 그들이 몰랐던 8번째 희생자가 숨어 있었다. 당시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고교 선배 병준(김병순)이다.
삼촌이 월북했던 병준은 사건 전날 우연히 모교를 찾았던 게 빌미가 돼 후배들을 의식화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는다. 7명은 그런 사연은 모른 채 잔뜩 겁먹고 연방 머리를 조아리는 그를 경찰서에서 보고 단체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은 병준은 공연계 큰손이 되면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종태의 딸 수정(박혜나)의 앞길을 막아선다. 뒤늦게 이를 안 종태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연극을 포기할지를 놓고 고민한다. 급기야 아버지와 불행한 현실을 잊기 위해 뮤지컬에 몰두하는 수정과, 불행했던 기억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연극에 매달리는 종태의 친구들이 충돌한다.
서울시극단의 ‘7인의 기억’(장우재 작·연출)은 실화를 토대로 연극과 뮤지컬이란 예술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것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을 토대로 한 현실참여극도 아니고 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는 해방의 탈출구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기억의 왜곡과 오해를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의 드라마를 스스로 써 가는 것이다.
50대를 대변하는 연극과 20대를 대변하는 뮤지컬이란 대립구도와 그에 따른 무대 분할이 상투적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에 이르는 후반부는 진한 감동을 안긴다. 2만∼3만원.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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