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세계를 구원하는 건… ‘큰 바보’의 역설
연기 ★★★★ 무대 ★★★★ 연출 ★★★☆
운보 김기창 화백의 ‘바보 산수화’를 닮았다. 빨갛고 두툼한 해가 떠 있는 창공 아래로 청록색 산들이 굽이친다. 황금빛 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산골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총각 오장군(김주완)과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녀 꽃분이(주인영)가 동심까지 느껴지는 소박한 사랑을 나눈다.
내일 군에 입대할 오장군은 “나 죽을라나 보다”고 느긋한 시름을 늘어놓다가도 홀어머니 농사일 덜어줄 생각에 몸과 맘이 바쁘다. 꽃분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그 순박한 사내의 아기를 갖겠다며 오장군의 손을 잡고 숲으로 들어간다. 오장군의 어머니(고수희)는 또 어떤가. 날아가는 비행기에 대고 삿대질하는 아들에게 조종사가 줄을 타고 내려와 혼을 낼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렇게 바보처럼 살던 사람이 입대했으니 ‘고문관’이 따로 없다. 같은 쇠붙이라도 농기구는 그렇게 잘 다루던 이가 총만 쥐면 사시나무 떨듯 떤다. 그러면서도 전사했을 때를 대비해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두라는 말에 발톱까지 살뜰히 깎는다. 고릴라 같은 손바닥도 사령관(이호재)의 어깨를 주무르는 데만 쓸모 있을 뿐이다. 사령관조차 “너처럼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찬다.
1975년 검열로 공연 취소 35년만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쓸모없던 존재가 영웅으로 ‘바보산수화’ 닮은 도가적 통찰
그런데 웬걸, 그런 겁쟁이가 서쪽나라의 침공을 코앞에 둔 동쪽나라를 구한다. 서쪽나라 사령관(권병길)은 그를 처형하면서도 적군이지만 모든 군인의 귀감이라며 경의를 표한다. 동쪽나라 사령관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전사통지서에서 “오장군 일등병은 그 애국심과 군인 정신에 있어서 온 동쪽나라 군인의 으뜸”이라고 밝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75년 명동극장에서 초연되기로 했다가 공연이 취소됐던 박조열 원작의 연극 ‘오장군의 발톱’이 35년 만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섰다. 명동예술극장이 한국 현대극의 클래식을 찾아 기획한 ‘현대연극풍경’의 첫 번째 작품으로.
당국의 검열이 풀린 1988년에서야 초연된 ‘오장군의 발톱’은 묘한 작품이다. 오장군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속 농부 모리츠를 떠올리게 한다. 둘 다 순박한 농부지만 전쟁으로 삶의 터전에서 뽑혀져 각각 전쟁터와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모리츠는 억울하게 유대인으로 몰렸다가 아리안 혈통의 순수 독일인으로 떠받들어지고 다시 패잔병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오장군은 동명이인으로 오인돼 군에 끌려와 겁쟁이, 역정보공작원 그리고 다시 전쟁영웅으로 끊임없이 실체와 어긋나게 호명된다.
이 때문에 ‘오장군의 발톱’은 전쟁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을 고발한 반전(反戰)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치풍자극적 해석이 강하던 ‘봄날’의 신화적 구조를 되살려내 지난해 호평을 받았던 연출가 이성열 씨도 이번엔 감자밭과 전쟁터, 낮과 밤, ‘사람을 닮은 자연’과 ‘자연으로 위장한 사람’의 대조를 통해 이런 반전의 메시지를 뚜렷이 했다.
하지만 모리츠의 희생이 개인적 비극이라면 오장군의 희생은 이타적이란 점에서 큰 차이를 지닌다. 오장군의 희생은 비록 비자발적인 것일지라도 동쪽나라가 각오했던 2, 3개 사단 병력의 ‘소모’를 막아냈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꽃분이의 삶마저 송두리째 파괴했을지 모를 참화를 차단했다.
소수의 병력을 희생해 다수의 병력을 구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병가지상사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가장 쓸모없어 보이던 존재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도가(道家)적 역설의 미학을 지녔다. 거기엔 고도의 합리성으로 무장한 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큰 바보’일 것이라는 통찰이 흐른다.
이 작품은 숱한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장병들에 대한 애가(哀歌)이기도 하다. 극작가 박조열 씨는 6·25전쟁 때 자원입대해 12년을 복무한 참전용사로서 전우들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고 말했다. 오장군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서럽게 우는 어머니와 꽃분이의 모습에 천안함 실종 장병들의 가족이 겹쳐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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