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 자취 따라가다 보니 ‘5공 필화’ 상처도 어느새 치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1일 03시 00분


김수환 추기경 소재 소설 펴낸 한수산 씨

위대한 종교지도자의 삶이
개 인에 미치는 영향 형상화

“고뇌 없는 한국 가톨릭문학
원죄의식 등 불어넣고 싶어”


군사독재 시절 겪었던 필화사건의 상처와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함께 엮어 소설로 펴낸 한수산 씨. 그는 “개인적으로는 필화사건 이상의 상처가 없었지만 김 추기경의 이야기를 쓰면서 해결되고 풀어진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군사독재 시절 겪었던 필화사건의 상처와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함께 엮어 소설로 펴낸 한수산 씨. 그는 “개인적으로는 필화사건 이상의 상처가 없었지만 김 추기경의 이야기를 쓰면서 해결되고 풀어진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위대한 종교 지도자의 삶은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소설가 한수산 씨(64)가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있던 1980년대 필화사건을 바탕으로 그의 삶에 투영된 김수환 추기경의 자취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7년 만의 신작 ‘용서를 위하여’(해냄)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한 씨를 만났다. 그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성당마다 걸려 있었지만 이념과 이해관계가 다른 이까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사이의 이해와 용서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 과정을 더듬어 보기 위해 개인사를 김 추기경의 삶과 함께 엮게 됐다”고 말했다.

한 씨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하다.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작가 자신이며 실명도 그대로 등장한다. “있었던 사실의 ‘취사선택’이 전부”라는 설명대로 등장하는 사건 대부분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은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과 함께 여러 매체에서 작가에게 추모 글을 청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그는 김 추기경의 행적을 따라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 등 곳곳을 방문하면서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곪은 상처, 고문으로 인한 오랜 후유증을 되짚어 본다. 전두환 정권 당시 겪은 필화사건으로 오랫동안 고통과 상처에 시달렸던 한 씨는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고집스레 생각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의 삶을 돌아보며 점차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깨닫고 상처를 치유해 간다.

한 씨의 필화사건은 1981년 중앙일보에 ‘욕망의 거리’를 연재할 때 일어났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경제성장기 주인공들의 정신적 공황을 그린 이 작품에 대해 신군부는 ‘국가원수 모독’ ‘군비방과 이적행위’ 등의 혐의를 덧씌웠고 한 씨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 부분을 글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생각해 보기조차 힘들었다. 이 작품 속에서도 그 장면은 재교정도 따로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가 실제로 김 추기경을 만난 것은 한 번뿐이다. 그조차도 악수 후 몇 마디를 나눈 게 전부. 한 씨는 “김 추기경 전집을 통해 그가 어떤 영성의 성직자였는지 천착했고 이를 통해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었으며 그의 삶이 한국의 현대 정신사이자 민주사, 가톨릭사였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일을 용서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용서하진 못하더라도, 이젠 잊었다고 말할 순 있다. 용서는 신의 몫이니까”라고 답했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신자가 있지만 가톨릭 문학, 기독교 문학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간증 수준에 그치거나 로보캅같이 인간적 면모가 전혀 없는 순교자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괴로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기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그려내는 과정이 없다면 그건 가톨릭 문학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인기작가’ ‘감성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던 한 씨. 그는 “이제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노(老)작가’라고 하면 될 나이가 됐다. 인생을 보는 지혜롭고 따스한 시선을 담아내고 싶다”며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원죄의식을 기반으로 한 가톨릭 문학을 심화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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