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표 4단 ● 이창호 9단
결승 5번기 2국 3보(36∼54) 덤 6집 반 각 3시간
흑 ○가 이창호 9단의 기풍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수. 이 9단이 초반부터 이런 강수를 던지는 건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9단 나름대로 판단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흑 ○는 심했다. 역시 참고도 흑 1처럼 밖에서 젖히고 흑 5로 우상 쪽을 지키는 길이 간명했다. 흑 ○가 일으킨 파문은 우변에서 요동치고 있다. 우선 흑이 얻어낸 효과는 49까지 우변 집을 통째로 지켰다는 것. 50집이 넘는다. ‘가’의 약점만 보강한다면 70집 가까이 날 수 있다.
아무 부담 없이 이대로 처리된다면 흑의 필승지세다. 하지만 바둑에서도 공짜 점심은 없다. 백은 우변에서 흑에게 막대한 실리를 내준 대신 중앙에서 두터움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백 50으로 흑을 끊어간다.
어딘지 모르게 흑의 모양이 어설프다. 중앙 흑에서 시급히 보강해야 할 곳이 눈에 들어온다. 흑 53의 두 점은 일단 백진에 갇힌 상태. 이 돌은 백진 속에서 살겠다고 해야 한다. 흑 45, 51은 연결이 완벽하지 않다. 백이 ‘가’로 젖히면 응수하기가 마땅치 않다. 모두 우변 실리를 챙긴 후유증이다.
홍 4단은 느긋하다. 실리는 뒤지지만 두터움을 바탕으로 흑을 추궁할 곳이 널려 있다. 제대로 찌르면 흑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실리도 자연스럽게 채울 수 있다. 홍 4단이 좋아하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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