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조선시대 보자기의 미감을 직물화로 되살리는 데 여념이 없는 85세의 보자기 컬렉터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오른쪽)일본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의 직물화 ‘나는 수탉이다’. 사진 제공 한국자수박물관
《문화재계에선 “그가 없었으면 조선시대 전통 자수와 보자기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이다”, “전통 보자기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일깨운 것도 그였다”고 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수·보자기 컬렉터인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올해 85세인 허 관장은 요즘 나이를 잊은 채 일주일에 2, 3일씩 밤을 새우며 미술 창작에 몰입하고 있다.》 조선 보자기 컬렉터에서 직물화 작가로 변신
日왕실서도 작품 소장 “이젠 유화에 도전할 것”
1990년대 중반 농기구를 소재로 한 오브제 미술에 빠지더니 2000년대엔 비단을 이용한 직물화에 매료된 허 관장. 그가 2007년 이후 제작한 직물화 신작 90여 점을 수록한 화집 ‘허동화의 미술-정신의 연장(延長)’을 최근 펴냈다. 그의 직물화는 여러 색의 천연염료로 비단을 물들인 뒤 원하는 모양으로 조각을 내 전통한지에 붙여 만든 작품이다.
보자기 컬렉터지만 창작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그가 미술에 빠진 이유는 무얼까. 2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만난 허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30년 넘게 조선시대 자수와 보자기를 모으고 그걸 매일 보고 있노라니 조선 여성의 노랫가락이 들리더군요. 그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절로 그림을 그리게 됐지요. 그래서인지 이 나이에 밤을 새워 미술작업을 해도 힘든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의 직물화는 조선시대 전통 자수나 보자기의 미학과 잘 어울린다.
“조선 여인이 수놓은 자수를 보면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연못 속에 고기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새도 그려 넣었어요. 꿈을 그린 거지요.”
허 관장도 직물화를 통해 달 뜨는 소리, 별 부닥치는 소리, 나무에 새가 피어나는 모습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깊고 투명하다. 이에 대해 그는 “나의 그림을 ‘(허)동화가 그린 동화(童畵)’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일본 효고(兵庫) 현의 히메지(姬路)미술관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허동화 초대전’을 열었다. 일본 왕실의 아키시노 노미야(秋篠宮) 왕세자궁에 ‘나는 수탉이다’라는 작품이 소장돼 있기도 하다. 2008년 일본 전시 때 아키시노 왕세자가 이 작품에 매료되자 허 관장이 기증한 것이다.
허 관장은 이번 화집 출간과 함께 변신을 꿈꾸고 있다. 유화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올여름과 가을엔 서울과 부산에서 세 차례 유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