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그것은 수없이 많은 상황들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곳엔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그 말이 맞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곳은 평화롭다.’ 그 말도 맞다. 이 모든 것은 언제, 어디의 사정이냐에 따라 그토록 다르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아프리카를 여행한 폴란드의 언론인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는 아프리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에 공감을 표하는 저자는 대륙의 생성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역사를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약 5억5000만 년 전 아프리카는 대륙 가운데 최초로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의 역사도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 10만 년 전에는 작은 그룹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아시아 쪽으로 향했다.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문명이 발생했다. 나일 강 연안에선 이집트 사람들과 오늘날 수단 북부에 해당하는 누비아 사람들이 서로 다투며 역사를 주도했다. 중앙아프리카의 원시림에는 피그미족이 자리를 잡았다. 서부 아프리카 최초의 왕국인 가나 왕국은 사하라를 건너가는 무역로의 남쪽 끝에 서기 600년 무렵에 생겨났다.
1400∼1945년은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앞다투어 유린한 시기다. 1415년 포르투갈인들은 모로코의 항구 도시 세우타를 정복해 아프리카 대륙에 최초의 보루를 만들었다. 그들은 황금, 상아와 노예를 거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노예사냥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장한 사람들을 수백 년에 걸쳐 수천만 명 도둑질해 간 사건이었다. 저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경제적 인간적 비극을 만들어냈음에도 그 일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문책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의 쟁탈전은 더욱 가열됐다. 프랑스가 1881년 튀니지를 점령하자 영국은 1년 뒤 이집트를 집어삼켰다. 독일은 나미비아, 탄자니아를 차지했고 벨기에는 콩고에서 벨기에령 ‘콩고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혼란이 커지자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1884년 11월 15일 유럽 13개 국가 대표들을 베를린의 ‘콩고 회의’에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완전히 나눠 갖는 데 합의했다. 문제는 지리적, 종족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갈라놓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른 어떤 대륙을 봐도 아프리카처럼 수천 킬로미터 이상 직선으로 곧게 뻗은 국경선은 드물다”고 지적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에서도 자주(自主)의 분위기가 일었다. 1945년 10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5차 범아프리카 회의에 젊은 아프리카인들이 모여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우리 대표들은 평화를 믿는다. 하지만 서방 세계가 아직도 인류를 폭력으로 통치하려고 결심하고 있다면 아프리카 사람들도 자유를 쟁취할 마지막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폭력이 그들 자신과 세계를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기로 결정하였다.”
세월이 흘러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물러났지만 부패한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줌으로써 아프리카 현대사에 또 다른 해악을 끼쳤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진짜 역사는 앞으로 씌어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현 세대에서, 아니면 그 다음 세대에서 씌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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