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서울 남산 중턱에 완공된 조선신궁(가장 높은 격의 일제 신사)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조선 내 일왕 숭배의 상징물이었다. 29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는 일제의 조선신궁 건립 10주년 기념 사진집을 분석하는 워크숍 ‘제국 안의 조선, 조선 안의 제국’이 열렸다. 사진집의 제목은 ‘은뢰(恩賴·‘흘러내리는 일왕의 위엄 있는 자태’를 의미)-조선신궁 어진좌 십주년기념(朝鮮神宮御鎭坐十周年記念)’. 1925∼1935년 조선신궁에서 진행된 각종 의례와 조선 각지의 풍광 500여 장을 담았으며 1937년 발간됐다.
사진집을 발굴한 김수진 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발표문 ‘조선신궁기념사진집 읽기’를 통해 “이전의 이미지들이 조선의 미개함을 표현한 데 비해 ‘은뢰’에서 조선을 응시하는 시선은 낭만성에 강조점을 두었다”고 분석했다. 농촌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고 조선을 순치된 노인과 농민의 나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식민 권력 스스로가 꿈꾸는 판타지를 만들어 냈다는 것.
사진집에서 조선은 미개한 곳이 아닌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필터를 사용해 안개가 낀 듯한 평온하고 몽환적인 농촌을 연출했다.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농부, 새를 쫓는 방울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 등이다. 반면 도시의 풍광은 사선으로 잘라 편집하는 식으로 역동적으로 그렸다. 김 교수는 “미개했던 조선이 제국의 ‘은혜’로 인해 평화와 근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사체가 되는 조선인은 노인과 아이, 여인으로 한정해 순치된 조선의 이미지를 표출했다. 조선신궁을 찍은 사진들은 아름답고 숭엄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그려졌다. 조선의 노인이 신궁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 등이다. 이미지 연출을 위해 사진을 중첩하거나 합성한 흔적들도 드러난다.
김 교수는 “사진집이 나온 1937년은 일제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내선융화론’에서 나아가 ‘내선일체론’으로 이행하던 시기였다.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바꾸는 근본 도구이자 상징으로서 조선신궁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목수현 HK 연구교수는 ‘조선미술전람회의 문명화의 선전’ 발표를 통해 1922년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를 조명했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가 △작가의 거주지를 강조함으로써 조선 전체를 일제가 통합 장악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형상화했고 △그림 소재의 변천을 통해 ‘향토 조선’에서 ‘근대화된 조선’으로 바뀌는 모습을 조선인들에게 선전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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