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가지러 가던 날, 그는 아끼느라 잘 입지 않는 새하얀 순면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오토바이의 진동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는 얇은 스판 바지와 몸에 착 들러붙는 검정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또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을 겹쳐 입고 롱부츠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일 년에 몇 번 꺼내지 않는 명품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목에는 붉은 머플러를 둘렀고 머리에는 멀리다비두스의 상표가 선명한 수건을 모자처럼 동여맸다. 그리고 큼직한 스포츠 시계를 차고 가죽 장갑을 낀 한쪽 손에는 돈 가방을, 한쪽 손에는 헬멧을 들었다.’ ―성석제 소설 ‘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에서》 온 세상이 화창한 봄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텅 빈 도로 한가운데를 모터사이클로 질주하는 꿈을 꿔본다. 폭주족 같은 ‘일탈형’ 라이딩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적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이 레저의 한 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제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바이크 투어’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도 많다.
모터사이클로 질주하는 것은 자동차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온몸으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리기 어려운 좁은 길,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다. 자전거처럼 진땀 흘리지 않아도 된다. 라이더 리후 씨(49)는 “자동차를 타면 인간인 내가 그 자동차의 부품이 되는 것 같다”며 “오토바이는 말을 탄 듯 기계를 지배하며 온몸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받지 못하는 맨몸으로 모든 종류의 길을 느끼며 달리는 행위는 나약한 인간이 이 세상에 용감하고 정직하게 대면하는 메타포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모터사이클산업협회(KMI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모터사이클은 8만여 대에 이른다. 모터사이클 인구도 2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본다. 특히 600cc 이상 대형 모터사이클 동호회는 2000개쯤 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자열 LS전선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안충웅 삼포식품 회장, 배우 최민수 씨도 모터사이클 마니아다.
대형 모터사이클은 중년 남성들의 ‘로망’으로 꼽혀 왔으나 이제는 20, 30대까지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할리데이비슨 관계자는 “젊은 라이더들과 접점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마켓 11번가에서 최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일부 기종과 의류, 액세서리의 판매를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모터사이클이라는 단어에 귀가 쫑긋해지는 이들을 위해 라이더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살펴봤다. 6년차 라이더 양은정 씨(45)는 “차가운 기계가 심장을 떨리게 한다는 게 놀랍지 않냐”고 반문한 뒤 “어떤 라이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터사이클 라이딩 룩의 기본은 멋이 아니라 안전이다. 라이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4총사’는 헬멧, 장갑, 부츠, 가죽재킷이다.
모터사이클과 가죽재킷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라이더가 넘어져 바닥에 팔다리 등이 쓸릴 경우 가죽 소재의 옷이 가장 안전하다. 패션 재킷과 라이딩 재킷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패션 재킷은 가죽 소재라도 얇고 가볍지만 라이딩 재킷은 제법 묵직하다. 어떤 경우에도 가죽이 찢어지지 않도록 두툼한 소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죽은 내구성이 강하고 바람을 막아주며 착용감이 우수하다. ‘질긴’ 합성섬유 소재의 재킷도 괜찮다. 라이딩 재킷은 소매 부분이 일반 재킷보다 길다. 모터사이클을 탈 때 항상 앞쪽으로 뻗어 있는 팔을 다 덮을 수 있게 디자인했고 팔꿈치 부분은 곡선 처리했다. 어깨 부분에 여유를 둬 보호대를 착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허리 부분은 밴드를 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돕는다. 여름용 재킷은 미세한 구멍을 뚫어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땀이 많이 나는 부위에는 지퍼를 달았다. 재킷의 어깨와 팔꿈치, 쇄골과 척추 부분에 보호대가 들어 있는 제품도 있다. 라이딩 재킷을 고를 때는 몸에 꼭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여름에도 반팔이나 민소매 옷을 입는 것은 좋지 않다. 뜨거운 햇빛에 화상을 입거나 넘어졌을 때 심한 찰과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딩 팬츠를 선택할 때는 통이 넓은 바지나 나팔바지는 적합하지 않다. 바짓단이 펄럭거리면 걸리적거릴 뿐 아니라 뜨거운 배기관에 옷자락이 닿아 손상될 수도 있다. 길이는 일반 바지보다는 살짝 긴 편이 좋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발목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재질은 가죽, 진, 도톰한 면바지류 등 내구성이 강하면서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딱 붙거나 신축성이 없는 바지는 피해야 한다. ‘챕스(chaps)’라 불리는 덧입는 가죽바지는 밑위 부분이 반달 모양으로 뚫린, 민망한 모양새로 ‘변태바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베테랑 라이더라도 꼭 갖춰 입어야 하는 품목이다.
라이딩 부츠는 모터사이클 파이프의 뜨거운 열기, 도로에서 불시에 날아드는 돌멩이와 날씨 변화로부터 라이더를 보호한다. 주로 내구성이 있는 소가죽으로 만들며, 일반 부츠에 비해 무척 무겁고 딱딱하다. 라이딩 부츠의 코는 돌덩이처럼 딱딱하고 밑창이 두껍다. 바퀴가 부츠 위로 지나가도 안전하도록 만들었다.
라이딩 장갑은 바람, 햇빛, 더위 및 추위에서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손가락 전체를 덮는 장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처음 착용했을 때 살짝 끼는 듯 꼭 맞는 장갑을 골라야 핸들과 그립 조작에 용이하며 피곤을 덜 수 있다. 라이딩 전용 장갑은 외피에 박음질을 해 자극을 최소화하고 관절 부위를 곡선으로 재단해 ‘잡는 맛’을 높였다. 손 부위는 최전방에서 외부 환경과 접하기 때문에 계절과 환경에 따른 적절한 장갑 선택이 중요하다.
모든 라이더와 동승자는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를 주행하거나 푹푹 찌는 여름이라 해도 헬멧은 필수다. 헬멧의 가격과 디자인은 천차만별이지만 착용 시 불편함이 없도록 사이즈 선택을 잘해야 하며, 공인 기관에서 검증받은 헬멧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색상과 디자인은 취향에 따라 선택하되 되도록이면 다른 운전자의 눈에 잘 띄도록 밝은 색상의 포인트가 있는 헬멧을 권한다.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스타일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딩 룩에도 유행은 있다. 라이딩 룩은 체형에 꼭 맞는 핏(fit)에 눈에 잘 띄도록 포인트를 주는 것이 특징. 모터사이클에 앉아 있는 자세를 고려해 속옷이 보이지 않도록 바지는 밑위 길이가 길고 상의도 길이가 긴 편이다.
최근 스키니 진이 유행하면서 라이딩 팬츠의 바지폭도 예전보다 더 좁아졌다. 가죽 소재 의류가 많다 보니 검은색에 주황색 등으로 포인트를 주곤 했으나 올해는 흰색을 비롯해 사랑스러운 연한 핑크색 등 파스텔 색조가 강세를 보인다고 할리데이비슨 GM영업팀 백은혜 씨가 설명했다. 백 씨는 “문신 디자이너들이 프린트 디자인을 한 티셔츠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했다.
날씨가 따뜻해도 2∼3시간 이상 라이딩에는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블재킷은 단정함을 살리면서도 이중으로 바람을 차단해준다. 기온이 떨어지면 옷깃을 세울 수 있다. 손가락이 드러나지 않는 장갑도 필수다. 기상 악화를 대비해 비옷 등 레인 기어를 갖춰두는 편이 좋다. 비가 와도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뒷면에는 반사판이, 팔 부분에는 반사줄이 부착돼 어두운 날씨에도 안전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다. 옷이 젖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가죽재킷도 보호할 수 있다.
여름철 두툼한 가죽재킷이 부담스럽다면 보호대를 탈·부착할 수 있는 메시 소재의 재킷도 권할 만하다. 그물망 같은 섬유조직으로 통풍성이 좋아 피부 온도를 낮춰 쾌적하고 시원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라이딩 기어 브랜드로 할리데이비슨과 코미네, 알파인스타즈 등이 있다.
나상훈 씨(38)는 “모터사이클은 순종적으로 따라 움직이는 충직한 동물을 닮았다”면서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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