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보이지 않는 것의 틈새를 여행하는 화가…11∼24일 이상효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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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7일 03시 00분


화가 이상효 씨의 ’카오스에서 카오스로’.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층에서 신비한 색감과 내면의 울림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진화랑
화가 이상효 씨의 ’카오스에서 카오스로’.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층에서 신비한 색감과 내면의 울림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진화랑
가볍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화가 이상효 씨의 회화는 우직하고 진지하다. 그림은 내용인가 형식인가. 그 경계를 탐색하는 조형적 실험과 손의 노동을 결합한 작품의 초점은 존재의 근원을 길어올리는 데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작업의 첫 단계는 밀도 높은 화면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표면에 회반죽 같은 모델링 페이스트를 바른 뒤 색을 겹겹이 쌓아올린다. 그런 다음 화면을 벽에다 세우고 물감을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는 드리핑 기법을 수없이 반복한다. 물감이 흐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성과 가변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화면에 줄무늬가 촘촘히 자리 잡는다. 시간의 퇴적층처럼 켜켜이 쌓아올린 색채. 그 위로 흘러내린 금빛 은빛 물감이 어우러지며 은은하게 반짝인다.

11∼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02-738-7570)에서 열리는 이상효전은 밑칠과 표면 사이에서 부유하는 색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선보인다. 80년대 말 시작한 ‘카오스로부터’ 시리즈와 2000년대 ‘어느 연금술사의 꿈’을 거쳐 최근의 ‘카오스에서 카오스로’ 연작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시간의 생성과 소멸, 한국과 서구 문화의 융합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녹여낸 작업이다.

두꺼운 화면에 고분 벽화의 전통 문양을 조각도로 새겨 넣은 기존의 부조 같은 회화와 더불어 문양은 사라지고 표면은 평평해진 신작을 내놓는다. 기존의 파스텔톤 색감을 유지하면서도 원색의 물감이 슬쩍슬쩍 얼굴을 내민다.

“내 그림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틈새를 여행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물감을 겹쳐 칠함으로써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안에 무엇인가 감춰져 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내면의 진실은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 숨어 있다.”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스페인의 국립마드리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미술과 음악 이야기를 접목한 ‘색을 사랑한 뮤즈’를 펴낼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다. 잔 기교 없이 덤덤하지만 자꾸 들을수록 감칠맛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는 화가. 바로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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