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신주를 모시는 문묘 배향은 유교권 국가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과 같다. 아니 더 어렵다. 학자로서 지성과 인격체로서 도덕성 그리고 후대에 끼친 정치적 영향력까지 골고루 겸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교 국가를 천명했던 조선에서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우리 유학자 18명에 대한 평전을 모았다.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에서 최치원과 설총 두 명만 입성이 가능했다. 신라보다 유학이 성했지만 역시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도 안향과 정몽주 두 명만 배향됐다. 그렇다면 조선에 배당된 14현은 누구일까.
조선 유학이 자랑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역사를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조선 사림의 순교자인 조광조를 더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삼문 박팽년 같은 사육신이나 김시습 남효온 같은 생육신은 어떨까. 빠져 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도 빠져 있고 퇴계와 더불어 동인의 태두로 꼽히는 남명 조식도 빠져 있다.
그럼 그 자리를 채운 이들은 누구일까. 조선유학의 적통이라 평가받는 이들이다. 조광조의 스승인 김굉필, 김굉필의 솔메이트였던 정여창, 퇴계가 인정했던 유학자 이언적, 호남유학을 대표하는 김인후, 율곡의 솔메이트였던 성혼.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율곡의 제자로 조선 정권을 장악한 서인뿐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중 유일하게 배향된 조헌, 예송논쟁의 이데올로그였던 김장생과 그 아들 김집, 양송(兩宋)으로 불리던 노론의 태두 송시열과 송준길, 소론의 영수였던 박세채다.
역사소설가인 저자가 이런 정치적 맥락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책은 이를 무시하고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집에 기록된 그들의 인물평에만 집중한다. 거기엔 학자나 관료로서의 업적보다는 인간됨됨이가 우선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효자였고 열혈독서가였고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언가였다. 그 면면을 음미하다 보면 비록 근대화 이후 비판의 도마에 올랐을지언정 서인세력이 당대에 누렸던 도덕적 우월성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 그들은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다. 이 지독한 현실주의의 시대, 세상의 소금이 되고자 했던 선비가 그토록 그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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