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연극은 굴 요리와 같다. 처음엔 심심한 듯하지만 향긋한 뒷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제 맛 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원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비릿한 맛은 은은하게, 상큼한 뒷맛은 길게 끌고 가기 쉽지 않다.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은 올해 많은 체호프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제 맛을 내는 작품은 드물다.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을 ‘코미디’로 규정했다. 그의 작품을 주로 무대화한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를 비극으로 풀어냈다. 국내 공연은 과거 비극적 해석을 쫓다가 최근 그 희극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원재료의 맛을 못 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5∼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바냐 아저씨’는 그 최고의 레시피를 선보였다. 이 극장을 이끄는 러시아의 66세 노장 레프 도진은 스타니슬랍스키의 비극적 정조를 유지하면서도 잘 훈련된 배우의 눈빛과 몸짓을 통해 체호프 대본의 행간에 숨어 있는 희극성을 절묘하게 끌어냈다.
그 숨은 희극성은 자기 연민에 가득 찬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빚어진다. 세레브랴코프 교수의 시골 영지를 대신 돌보며 그를 숭배해왔던 바냐는 막상 교수가 퇴임한 뒤 낙향하자 지독한 환멸에 시달린다. 마흔일곱 나이에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인물이 속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 환멸은 교수의 젊은 후처 엘레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늙은 남편에게서 환멸을 느낀 엘레나는 바냐의 줄기찬 구애를 뿌리치며 자신의 정숙함을 강변하지만 바냐의 친구인 시골의사 아스트로프와 남몰래 연정을 나눈다. 아스트로프는 자연과 노동을 찬미하면서도 부지런한 시골소녀 소냐가 아니라 게으른 도시녀 엘레나를 사랑한다. 세레브랴코프 교수 역시 예술을 논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무감하다.
도진은 이런 이율배반성을 대사가 아닌 연기로 형상화한다. 배우들은 입으로는 장황한 대사를 떠들면서 눈으론 자신의 욕망의 좌표를 정확히 겨냥한다. 극 도입부 엘레나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바냐와 아스트로프의 눈길은 정확히 그에게 고정된다. 아스트로프가 숲에 대한 사랑을 늘어놓을 때 엘레나와 소냐의 시선은 그를 꼭짓점 삼아 삼각대형을 이룬다.
이 작품은 시선의 연극이다. 아스트로프가 관객을 바라보며 숲과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엘레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아스트로프를 뜨겁게 응시한다. 바냐에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훈계하던 그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그 둘의 키스 장면을 목도한 바냐의 시선은 더욱 처참하다. 다른 연극에선 둔감하게 그려지는 세레브랴코프마저 이 작품에선 아내의 바람기를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을 지녔다.
후반부 도진은 원작에서 엘레나와 아스트로프가 비밀리에 이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교수와 소냐의 눈앞에 폭로되도록 한다. 이를 통해 바냐 앞에서 정숙을 말했던 엘레나와 소냐 앞에서 자연과 노동을 찬미했던 아스트로프를 어릿광대로 만들어 버린다. 바냐와 소냐가 그토록 열망했던 문화적 삶의 허망함에 대한 폭로인 동시에 표면의 논리와 이면의 심리가 따로 노는 인간 본질에 대한 풍자다.
청춘을 다 바쳐 열망했던 것이 허망하게 느껴진 순간 젊은 여인의 사랑을 통해 이를 보상받으려는 중년 남성이 어디 바냐뿐이랴. 체호프는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걸린 중년 남성의 코믹한 작태 속에서 인간 보편의 문제를 끌어낸다. 그것은 바냐와 소냐로 대표되는 자연적 삶과 세레브랴코프와 엘레나, 아스트로프로 대변되는 문화적 삶 사이에 가로놓인 본질적 심연이다. 그 심연을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세 갈래 길에 선다.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견뎌내는 것.
중년의 사내 바냐는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을 흘리건만 오히려 젊은 소냐가 나직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살아야 해요, 길고 긴 나날들을. 살아 나가야 해요, 긴 밤들을. 참을성 있게 운명이 우리에게 준 시련을 견디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가, 평화를 모르다가 늙어서, 우리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기꺼이 죽는 거예요.”
그 순간 무대 위에 떠 있던 세 덩이의 건초더미가 하강한다. 메마르고 건조하게 그렇지만 묵묵히 겨울바람을 버티고 서 있는 건초더미는 그렇게 가슴 시리게 아픈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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