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카너 폴리 지음·노시내 옮김/320쪽·1만5000원·마티
인도주의 활동가로 국제앰네스티(AI)와 유엔난민기구(UNHCR) 등에서 일하며 구호 현장을 뛰었던 저자가 보편적 정의를 위한 인도주의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한 책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호하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지지한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구호단체가 개입의 폭을 넓혀 가는 게 옳은 일인지 묻는다.
저자는 국제기구와 인도적 구호단체들이 단순하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그 영역을 행정이나 보건, 교육으로 확대하면서 점점 정치적 색깔을 띠게 됐다고 진단했다. 2003년 수단 다르푸르 사태(수단 정부의 아랍화 정책으로 촉발된 유혈사태) 때 한 구호단체가 미국을 중심으로 종교기관과 인기 연예인을 동원해 국제적인 개입을 촉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현지의 피해 상황을 부풀려 서구 사회의 무력 개입을 요구했다. 다르푸르 상황은 이 때문에 더 험악해졌고 구호활동가들은 반란군은 물론 수단 정부군과 민병대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게 됐다.
구호단체들의 아프리카 발칸반도 동티모르 아이티 등에 대한 인도적 개입은 주권 인권 국제법에 관한 논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확립되고 유엔헌장 제2조에 나와 있는 내정불간섭 원칙이 밀려나는 한편 유엔파견단의 임무가 평화유지에서 ‘평화강제’로 전환되고 전 영토에서 행정을 관장하는 기능까지 떠맡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도주의 구호 활동이 개입의 폭을 넓히면서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며 ‘독재자와 대량살상무기로부터 이라크인들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는 고통 받는 민간인을 구한다는 인도주의 구호가 제3세계에 서구식 자유주의를 이식하는 일로 변모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저자는 “인도적인 선행만으로 할 일이 끝났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인도주의는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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