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은 떴고 스토리는 가라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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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8일 03시 00분


리들리 스콧-러셀 크로 콤비의 ‘로빈후드’

영화 ‘로빈후드’의 한 장면. ‘로빈후드’라는 영웅이 되기 전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평범한 활잡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왕조차 두려워한 영웅으로 이끈다. 사진 제공 오락실
영화 ‘로빈후드’의 한 장면. ‘로빈후드’라는 영웅이 되기 전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평범한 활잡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왕조차 두려워한 영웅으로 이끈다. 사진 제공 오락실
해상 전투장면 압권
영웅적 서사는 미흡

수많은 인물들 등장
조연 명연기 퇴색 흠


‘글래디에이터’의 감독 리들리 스콧과 배우 러셀 크로가 1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12세기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전설적 영웅 로빈 후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귀족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통쾌한 의적의 활약을 그린 영화는 아니다. 의적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스콧 감독과 크로는 전형적인 영웅담이었던 기존 ‘로빈 후드’를 새롭게 해석했다. 영화는 로빈 후드가 왕의 명령을 따르는 평범한 궁수(弓手)에서 의적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다. 정작 의적으로서의 활약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로빈 후드가 의적이 되는 순간 끝난다. “그렇게 로빈 후드의 전설은 시작됐다”라는 자막과 함께.

로빈 후드의 모습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영웅 로빈 후드와 크게 다르다. 로빈 롱스트라이드는 시장의 야바위꾼처럼 다른 용병들과 내기도 하고 주먹다짐도 불사한다. 돈을 위해 기사인 척하기도 한다. 스콧 감독은 영웅이 되기 전 로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영웅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리처드 왕의 용병이자 평범한 활잡이였던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어떻게 ‘영웅’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로빈 후드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고 결국 백성들의 피폐한 삶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건 자유요, 정당한 자유!”라고 외친다. 스콧 감독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로빈 후드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는 올해 초 영화사 UPI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로빈 후드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영국은 파산 상태였다. 존 왕은 로빈을 비롯해 십자군전쟁에서 돌아온 병사 수천 명을 데리고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의 가족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그들이 산적 떼에 가담하려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스콧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장엄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여줬던 볼거리는 ‘로빈 후드’의 전투장면에서도 이어진다. 영국 웨일스의 해안에서 촬영한 전투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조연은 너무 많고, 몇몇 조연의 역할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부족하다.

로빈 후드가 스스로의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월터 록슬리 경을 연기한 맥스 본 시도와 로빈 후드를 괴롭히는 고프리 경을 연기한 마크 스트롱의 연기는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는 상영시간 2시간 20분 동안 화면을 채우는 수많은 인물에 가려 쉽게 잊혀진다. 그만큼 그들의 연기는 짧게 지나간다.

‘로빈 후드’는 12일 제63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지난 10년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다빈치코드’(2006년)와 ‘업’(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로빈 후드’는 스콧 감독이 연출한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영웅이 되기 전 평범했던 시절의 영웅의 이야기는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로빈 후드’의 장점은 영웅의 민낯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그렸다는 데 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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