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果忘(과망)이라 한다. ‘논어’에는 果忘의 은둔자들이 여럿 나온다. ‘微子(미자)’ 제7장의 荷O丈人(하조장인)도 그 하나다. 荷는 擔(담), O는 대삼태기, 丈人은 老成한 분이다. 子路는 공자를 모시고 여행하다가 우연히 뒤처졌는데, 이때 하조장인을 만나 선생님을 못 보았느냐고 묻게 되었다.
四體는 四肢. 五穀은 벼 稻(도) 메기장 黍(서) 차기장 稷(직) 보리 麥(맥) 콩 菽(숙)이다. 孰은 誰와 같다. 植는 세울 ‘식’으로 읽기도 하지만, 주자를 따라 둘 置(치)의 통용자로 본다. 芸(운)은 김맨다는 뜻이다.
주자는 하조장인이 자로에게 농업을 일삼지 않고 스승을 따라 유람한다고 꾸짖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하조장인은 공자의 존재를 알아 사지를 움직이지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어 선생님이라 하느냐고 비난한 듯하다. 이념의 실현을 위해 周遊한다고 비판한 것이리라. 張維(장유)도 ‘중니는 조롱당했으니, 오곡을 분별할 줄 모른다고’라 했다.
공자는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았으나 四肢를 게을리 한 것이 아니다. 金時習은 ‘인생 백 년에 염려할 바 한둘이 아니거늘, 사지를 게을리 하여 편하고 배부르길 구한다고 누가 말하나(人生百歲內, 所慮非一端. 孰云惰四肢, 居食求飽安)’라 했다. 우리가 부정할 존재는 세상일을 돌보지 않는 游手輩(유수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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