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필리핀대 교수로 돌아가면 요즘 한창 인기 있는 한국어 어학과정을 포함해 한국학 교육과정을 심화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필리핀에서 온 알드린 파둘 리 씨)
“놀라운 경제성장 이야기를 접하고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한국의 발전을 이루게 한 ‘한국 문화’를 계속 공부할 계획입니다.”(탄자니아에서 온 앤드루 다이슨 씨)
7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 교정에서 만난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의 학문 여정을 표현했다.
‘한국학’이라는 어휘조차 생소하던 1980년 문을 연 한국학대학원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한국학대학원은 이를 기념해 올해 10월 서울에서 ‘제4회 주니어 국제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한국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거나 교육하는 젊은 학자들만의 학술대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학대학원이 문은 연 것은 전통과 정신문화에 대한 인식이 척박하던 시절에 한국의 역사와 민속,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1980년 첫 신입생으로 입학한 이길상 한국학대학원 교수(교육학)는 “경제 발전에만 신경 쓰느라 절, 서원, 향교, 종갓집 등을 찾는 답사가 생소하던 시절에 32명의 신입생은 교육과정을 따라 전국을 누볐다”고 회상했다.
개원 초기 30명 안팎이던 학생 수는 현재 223명(외국인 87명 포함)으로 늘었다. 한국음악사, 한국미술사, 구비문학 등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끊어질 수 있는 한국학의 세부 연구 분야들이 한국학대학원 출신들의 활약으로 학문적 명맥을 잇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졸업한 한형조 한국학대학원 교수(철학), 소재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미술사),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등은 중견학자로서 각 분야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 교수로 활동하는 외국인도 다수 있다.
한국학대학원은 크게 △1980년대 중반의 수난기 △1990년대 타 대학과의 경쟁 △2000년대 한류에 따른 한국학의 세계화 시기를 거쳤다. 한국학대학원은 1980년대 중반에는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연구로 학계의 외면을 받았고, 1990년대에는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서 국제대학원 내에 한국학협동과정을 설치하면서 통폐합 위기를 겪기도 했다. 김병선 교학처장은 “소수 정예의 국내외 학생들에게 학제 간 연구를 통한 종합적인 교수법으로 타 대학과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문화론’ 강의의 경우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문학 교수 4명이 한꺼번에 강의실에 들어섰다.
2000년대 들어 한국학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4년마다 대학원이 개최하는 세계한국학대회는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한국학 논의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한국학이 세계 각국의 동아시아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노태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 구비문학대계 편찬 사업, 한국학자 양성 등 한국학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한국학대학원은 최근 외국인 학생의 증가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2010년 후반기 외국인 신입생 모집 결과 20∼40명 수준이던 지원자가 103명(28개국)으로 늘었다. 문옥표 한국학대학원장은 “케냐와 스리랑카 나이지리아 등 처음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국가도 늘고 있다”며 “한국학을 세계 구석구석에 전파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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