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용이 일반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 김도식 건국대 철학과 교수는 유학 시절 자신이 쓴 논문을 아버지인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에게 보였을 때 아버지가 이같이 말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5월 27일 별세한 김태길 교수는 이 일화에서 나타나듯 철학의 대중화와 사회운동에 힘썼던 학자로 평가받는다. 》
‘윤리학’ ‘변혁 시대의 사회철학’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등의 연구서를 남긴 철학계의 거목이면서 ‘웃는 갈대’ ‘빛이 그리운 생각들’ 등 수필집을 여러 권 남긴 문필가이기도 했다.
김태길 교수의 1주기를 맞아 논문과 연구서를 모은 전집 15권과 ‘우송 김태길 선생의 삶과 사상’(철학과현실사)이 출간됐다.
김도식 교수를 포함해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심경문화재단 이사장),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박이문 포스텍 명예교수, 소설가 우애령 씨 등이 글을 실었다. 본래 이 전집은 김태길 교수의 구순을 맞아 제자들이 준비해 오던 것. 전집을 출간하기 전에 김 교수가 별세하면서 1주기 추모전집이 됐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는 “우송은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학자였다”며 “그의 학문적 인간적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추억담과 사상을 정리한 논문을 함께 엮어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윤리학’은 1964년 출간된 김 교수의 대표적 저작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서양 윤리학을 정리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대학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김영진 인하대 명예교수는 “우송은 논리학을 접목한 서양의 윤리학 방법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철학자로 국내 윤리학 체계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바람직한 삶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나’가 속해 있는 사회가 우선 어느 정도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1990년 ‘변혁시대의 사회철학’ 서문)
김 교수는 윤리학 체계를 정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윤리적 연구에도 힘썼다. 1986년 명예퇴직한 뒤 약 5년에 걸쳐 저술한 ‘변혁시대의 사회철학’은 그의 대표적인 후기 저작이다.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우송의 사회철학은 공동체 자유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공동체의 역할을 통해 평등 역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측면이 드러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철학적 내용을 담은 수필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추구했다. ‘흐르지 않는 세월’ ‘체험과 사색’ 등이 대표적이다. 1987년 10월 철학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랑방강좌(현재 철학문화아카데미)를 열고 계간지 ‘철학과 현실’을 발간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성숙한 사회 가꾸기 운동’을 펼쳤다. 능동적 의미에서의 자승자박(自繩自縛), 즉 우리 자신부터 고치자는 정신이 핵심이었다. 손봉호 고신대 명예교수는 '우송 김태길 선생의 삶과 사상’에 실은 글에서 “선생님께 윤리는 단순히 학문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자신의 삶으로 윤리적인 모범을 보이셨다”고 회고했다.
이한구 교수는 “‘철학과 현실’ 발간 당시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가 그 기치였다”며 “현실에 도움이 되는 철학, 철학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현실이라는 우송의 생각을 앞으로 더욱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27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는 출판기념회가 열리며 이날 ‘우송철학상’(가칭) 제정도 발표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김태길 교수는
충북 충주 출생으로 1943년 일본 도쿄대 법학부에 입학했다가 서울대 철학과로 편입해 1947년 졸업했다. 1960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2년부터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심경문화재단 이사장, 수필문학진흥회장을 지냈고 국민훈장 동백장, 인촌상, 만해대상 등을 받았다. 대학 교재로 사용되는 ‘윤리학’과 ‘변혁시대의 사회철학’ 등 학술서, 장편수필 ‘흐르지 않는 세월’과 수필집 ‘웃는 갈대’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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