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광, 아프리카 미술을 외치다/정해광 지음·심포지움
화가 11명에게 들은 아프리카의 美
《“아프리카의 색은 참으로 밝다. 흰색도 밝고 검은색도 밝게 보인다.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로 끌어내린 신들의 중심에 인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성전(聖殿)이 없고, 성전(聖典)이 없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즉 신성(神性)을 인간의 심성(心性)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조각이나 그림에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다.”》 굵직한 선으로 이국적인 동물을 그려냈다. 빨강, 노랑, 초록…. 원색이 화려하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프리카’를 느낄 수 있는 그림들. 책은 이 그림이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아프리카 미술관장인 저자가 아프리카 출신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화가 11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작품을 책 속에 담았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케냐 작가인 키부티 음부노는 자신의 출신 부족인 아캄바족의 일상과 설화를 주로 그린다. 키부티의 주제의식은 “인간 상호 간은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의 하모니를 추구하는 것, 그것을 인간과 자연의 존재 의미로 부각하는 것”이다. 잉크와 색연필로 작업한 그의 화폭에는 나무와 새, 동물이 한데 평화롭게 어우러진다.
2005년 타계한 탄자니아의 조지 릴랑가는 미국의 낙서화가인 키스 해링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 서구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화가다.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쉐타니’는 큰 귀와 입, 볼록 나온 배를 하고 있어 만화 캐릭터처럼 천진난만하다. 정치적인 이념이나 전통적인 미를 담았던 1970, 80년대 주류 아프리카 미술과 달리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고 조화와 결속, 자유로움을 강조했다.
세네갈의 은도이 두츠는 1973년 생으로 아프리카 작가 중에서도 젊은 세대에 해당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노란색과 푸르스름한 회색, 빨간색과 파란색,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채로 담아낸 현대 아프리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길, 거리에 펄럭이는 빨래, 사람들과 자동차가 뒤엉킨 모습…. 서민 동네의 무질서한 모습이 등장한다. 화폭에 남겨둔 여백, 경계가 불분명한 건물의 능선은 언뜻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람바 만당기의 작품은 군부 쿠데타와 부정부패, 종족 갈등 등 출신 국가인 콩고의 어두운 역사를 반영한다. 검은 쑥색으로 어두운 현실을 표현하고, 이를 면도날로 긁어내 검은색 아래의 흰색을 드러낸다. 그의 화폭에는 이렇게 어둠 속에서 베어 나오는 노란색과 흰색의 빛이 자주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흰색이나 노란색은 신이 인간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세네갈 출신 화가 이브나히마 케베의 화폭에는 마치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처럼 목이 긴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긴 목에는 모딜리아니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개인의 존엄성 혹은 개성을 중시하고 남의 주목을 끌기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심리를 담았다.
이처럼 아프리카 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아프리카의 전통과 자연환경 역사, 아프리카 사람들의 심리와 현재 모습까지 담겨 있다. 각 작가의 인터뷰가 단편적이고 짧은 탓에 아프리카 미술의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의 작품 사진은 흔치 않은 감상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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