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인간 대상 모든 연구는 사전심의” 法은 다가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연구의 필요성과 윤리성을 어떻게 판단하죠?” “심의를 받아 수정을 계속하다 보면 연구 진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나요?”

여러 대학 관계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 서울대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Institutional Review Board)가 ‘대학 IRB의 현실과 과제’를 발표하고 실제 심의 과정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2012년부터는 모든 대학이 IRB를 설치해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사전에 심의해야 한다. 법이 시행되면 노인의 성생활을 연구할 경우 해당 노인으로부터 얻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대상자에게 얼마나 충분히 설명을 했는지 등을 심의해야 한다. 현재 IRB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서울대와 고려대, 조선대 등 5곳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학 관계자 60여 명은 IRB 운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 심의 과정에서는 심의위원들이 ‘청년인턴을 활용해 서울지역 급식노인 80여 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연구 계획서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위원들은 자료의 활용 방안을 묻거나 연구 참여자(빈곤 노인) 보호와 관련된 연구자들의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본 대학 관계자들은 “연구자가 적은 중소 대학은 연합 IRB를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대 IRB 연구책임자 서이종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학위를 딸 때 심의 과정을 거쳤을 연구자들도 한국에서는 연구 윤리를 지키는 데 인색하다”며 “대학 내 연구의 절반가량이 노인이나 어린이 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들의 자발적 동의나 사생활 보호,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005년 10월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한 이래 지금까지 143건의 연구가 심의를 신청했을 뿐이다. 이는 서울대 전체 연구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연구 참여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심의 전문가도 없는데 연구자들의 의식도 바뀌지 않아 고민”이라는 한 대학교수의 지적이 실태를 말해 주고 있다. 관련 법 시행이 2년도 안 남은 만큼 대학들이 하루빨리 시스템을 만들고 연구자들도 새롭게 이 문제를 인식하기 바란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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