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3명은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은밀히 수행하던 중 염소를 치는 농민 2명, 소년 1명을 만났다. 민간인이었지만 이들을 풀어주면 자신들의 소재가 탈레반에게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루트렐이 반대해 염소치기들은 풀려났다.
1시간 반 뒤 이들 미군 4명은 중무장한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루트렐을 제외한 3명과 구출 작전에 나선 미군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루트렐은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렇다면 3명을 희생시켜 19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최근 20여 년간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힌 자신의 정치철학 강의 ‘정의(Justice)’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민주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는 자유 사회에 걸맞지 않은 혐오스러운 짓이라는 견해와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마지막 수단이라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공존한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인간사회의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미국 특수부대의 사례를 철학적 사고로 치환해보면 정의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데 제동장치가 고장났다. 앞에는 인부 5명이 철로에 있다. 오른쪽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1명뿐이다. 전차를 돌리면 1명이 죽는 대신 5명은 살릴 수 있다. 1명을 희생해 5명을 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나.
이번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 저 아래 철로로 제동장치가 고장 난 전차가 질주하고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당신 옆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있어서 그를 전차 앞으로 밀어뜨리면 열차가 멈춰 5명은 살릴 수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희생자의 수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이번에는 부담스러운가.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관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정의에 대한 논쟁은 이런 가치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한 관점이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방안이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큰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권리장전에 언론이나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다수의 힘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들이 규정돼 있다.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방임주의자와 공평주의자로 나뉜다.
정의를 미덕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해석하는 이론이 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도덕을 어느 정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덕과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예컨대 폭리를 취하는 자들은 법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2009년 구제금융 위기 때 미국 투자회사들이 세금에서 나온 구제금융 기금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인 일, 2004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뒤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폭리 논란 등 생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도록 도덕적·철학적 ‘사고(思考) 여행’으로 안내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