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땀이 뒤엉킨 몸짓으로 꿈의 세계를 보여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일 03시 00분


무용 ‘오큘러 프루프’
시각효과 ★★★★ 안무 ★★★ 관객 서비스 ★★☆

무용수 여덟 명이 나란히 서서 객석 저편을 응시한다. 어슴푸레 드러난 몸 위로 수많은 녹색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무용수의 신체는 서서히 픽셀의 집합으로 치환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특수효과를 연상시킨다. 몸이 움직이고 있지만 관객에게는 그저 녹색 점들이 무리지어 물결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것은 인간의 움직임일까, 아니면 컴퓨터 그래픽의 눈속임일까.

지난달 28, 29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호주 무용집단 ‘로그(Rogue)’의 ‘오큘러 프루프(Ocular Proof)’ 일부다. ‘Rogue’는 ‘악한’ ‘개구쟁이’란 뜻의 영어 단어, ‘오큘러 프루프’는 ‘시각적 증거’라는 뜻을 지닌다. 그 이름처럼 이들은 미디어 아트와 무용을 결합해 관객의 시각을 교란시키며 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묻는 작품을 선보였다. 함께 공연된 ‘더 카운팅(The Counting)’과 이 작품은 2008년 호주 멜버른의 실험예술축제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에서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작품 초반엔 그림자극이 등장했다. 대칭적 움직임을 선보이는 두 명의 그림자는 한 몸처럼 합쳐졌다 다시 분리됐다. 조명과 화면 사이의 거리에 따라 몸은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했다. 고전적 형태의 미디어 아트인 셈이다.

무용수들의 몸 위에 근육과 골격 영상이 투사되거나, 조명이 깜빡거리면서 무용수들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작품에 사용된 미디어 아트 기술은 영상매체에서는 예전부터 사용돼 눈에 익은 것들이지만 살아있는 몸을 모니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색달랐다. 무용을 포함한 공연예술은 모두 땀과 거친 호흡으로 대변되는 현장성이 특징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뒤집어 가상세계를 체현한 미디어 아트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시각 효과에 치중한 탓에 유기적인 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장면들의 모음’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공연이 끝난 직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40여 명의 관객에게서 질문 서너 개를 받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사회자는 “무용수가 피곤하기 때문”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늦은 시간까지 남은 관객에게 한층 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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