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며 개관 20주년을 맞은 모란미술관의 야외 조각 전시장. 실내 전시장에서는 사이와 긴장의 미학적 관점에서 현대조각의 흐름을 조명한 기념전을 열고 있다. 사진 제공 모란미술관
《파란 잔디밭 위로 국내외 작가의 조각이 놓여 있고 그 뒤에 나지막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가정집같이 소박한 분위기의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조각 설치 미디어작품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커다란 창으로 바깥 전시장과 산자락이 쏟아져 들어온다.》 지방-사립 난관 뚫고 척박한 문화토양에 두툼한 거름을 깔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미술관(관장 이연수)에선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조각전문 사립미술관으로 다채로운 기획전을 마련해온 이곳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자신의 정체성을 가늠해보는 전시를 열고 있다. 30일까지 열리는 ‘사이와 긴장’전은 전통적 조각개념에서 약간씩 엇박자로 벗어난 작품을 통해 ‘어제와 오늘, 내일의 조각 개념이 갖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내다보는 자리다. 031-594-8001
경기 광주시 쌍령동 영은미술관(관장 박선주)도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자연 속 문화공간. 이곳은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하는 집단창작 스튜디오를 겸비한 사립미술관으로 열 돌 생일을 기념해 7월 11일까지 ‘REMIND: 그곳을 기억하다’전을 기획했다. 1∼7기 ‘영은 창작 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준다. 031-761-0137
빼어난 풍광과 현대예술이 어우러진 두 곳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자연친화적 미술관. 야외 전시장에서 여유롭게 산책도 즐기고 전망 좋은 미술관에서 작품과 독대할 기회를 선사한다.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나들이 코스로 다녀오기에 맞춤하다.
○ 조각을 중심에 두다
영은미술관은 전시와 더불어 작가를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해 미술관 자체가 살아있는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전시장에서 어린이들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광주=고미석 기자1990년 논밭에 집을 짓고 야외 조각 전시장을 만들어 출발한 모란미술관. 스무 살 성년이 되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상업공간에서 외면하는 조소 작품 전시에 주력하고 있다. 20주년 개관 기념전은 탈장르, 탈형식의 흐름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조각의 영역을 넓히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다. 다섯 작가의 미니 개인전 형식으로 관람객과 작품, 조각과 비조각, 그 사이의 긴장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에서 값비싼 신소재가 아니라 생활 속 재료를 사용하되 노동집약적 과정을 담은 작품들과 만났다. 캔버스에 담긴 입술과 눈동자. 평면적 그림 같은데 들여다보니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조재영 씨의 ‘입체’ 작업이다. 사계절 풍경과 실내를 결합한 정상현 씨의 영상 작품은 컴퓨터 수작업으로 실재와 허상의 경계를 탐색한다.
인체 형상을 모티브로 한 전윤조 씨의 설치작품은 실의 연약함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긴장감이 섞여들며 소통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한다. 왕지원 씨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으로, 최혜광 씨는 밝은 이미지의 유쾌한 조각으로 관람객에게 다가선다. ○ 세대의 벽을 허물다
대유문화재단이 설립한 영은미술관은 깔끔하고 세련된 전시공간, 잔디광장, 창작 스튜디오가 조화를 이룬다. 특색 있는 기획전시와 더불어 작가들이 장기 단기로 입주해 작업하는 창작의 현장이 함께 있는 것이 돋보인다.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경우 주로 젊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지만 이곳에서는 방혜자, 강형구 씨 등 원로 중진이 신진들과 나란히 작업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개관기념전은 1∼7기 역대 입주 작가들이 기수별로 공간을 꾸몄다. 김기린, 방혜자, 강형구, 석철주, 김아타, 윤영석, 데비 한, 남경민, 박미나, 지니 서, 유봉상, 박주욱, 박용식 씨 등 작가 40여 명의 회화 설치 미디어 작품을 볼 수 있으며 미술관의 발자취를 조명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을 짚어온 모란미술관과 입주작가 프로그램으로 세대의 벽을 좁혀온 영은미술관. ‘지역’과 ‘사립’이란 이중의 난관을 넘어 각기 개성적 전시로 한국미술에 두터운 자양분을 공급한 점에서 상찬할 만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비상업적 문화공간을 꿈꾸고 실현하고 지켜오기까지 숱한 이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그들의 땀과 열정에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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