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子張(자장)’의 제7장에서 자하는 덕을 닦아 정치를 담당할 사람들이 해야 할 職分(직분)을 강조하기 위해 관청에 예속되어 물건 만드는 사람이 해야 할 직분과 대비시켰다. 공인들을 폄하한 것이 아니다. 肆는 주희의 설에 따르면 관청의 물건 만드는 곳이다.
以는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우선 순접의 而(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인이 관청의 물건 만드는 곳에서 부지런히 일해야 생산의 일에 정밀하게 되듯이 군자는 외물의 유혹에 휘둘리지 말고 배움의 뜻을 독실하게 지녀야 군자로서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한편 以를 목적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백공이 공장에 있는 이유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요, 군자가 배우는 이유는 그 도를 지극히 하기 위해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두 설을 보완하면 좋다. 致는 ‘대학’의 致知(치지)의 예처럼 궁극에까지 다한다는 뜻이다.
자하는 曾子(증자)나 顔淵(안연)과 달리 학문을 중시했으므로 옛 사람들은 한 등급 낮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하는 선인의 언행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밝혀서 군자로서의 덕을 실현하라고 가르친 것이므로 그 말이 매우 親切(친절)하다. ‘예기’ ‘學記(학기)’에도 ‘玉不琢不成器(옥불탁불성기) 人不學不知道(인불학부지도)’라 했다.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하는 군자의 직분을 말하려고 공인의 예와 비교했는데 중요한 것은 공인이든 군자든 專心致志(전심치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직분에서든 마음을 專一하게 만들고 뜻을 다해야 일을 이루고 목표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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