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녹슨 두 쪽 젓가락으로 식탁 위 멸치들을 하대하리 저 군산 대야도 앞바다서 뱃전으로 올라오자마자 바로 끓는 무쇠 가마 속으로 던져져 열반한 세멸 동자들
<김윤희의 ‘성자聖者멸치’에서>》
경남 거제 남부면 쌍근마을 어부들은 동트는 새벽 멸치잡이를 나간다. “통∼통∼통!” 뱃소리가 울리면 갈매기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생난리를 친다. “끼룩∼끼룩∼” 미친 듯이 울어 댄다. 하나둘 뱃전으로 모여들어 뱅뱅 맴을 돈다. 통통배는 물을 가르며 무심히 마을 앞바다로 나간다. 그곳엔 미리 쳐놓은 촘촘한 그물이 있다.
아침바다는 싱그럽다. 햇살이 팽팽하다. 그물엔 멸치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물을 건져 올리기 전엔 검푸른 물빛뿐이다. 그물이 서서히 좁혀지는 순간에도, 부유물들만 어지럽게 떠돈다. 그러다가 문득, 무수한 은빛 화살들이 파닥거린다. 멸치 떼다! 구물구물 은빛 멸치들은 일제히 아침햇살에 번득인다. 불끈 뛰어오르며 종주먹을 들이댄다.
어부들의 눈빛이 빛난다. 저마다 근육의 힘줄이 돋는다. 콧잔등과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등짝은 이미 젖어 흥건하다. 어부들은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멸치들은 몸부림친다. 점점 그물이 좁혀지고 끌어올려질수록 버둥대고 헐떡거린다. 그러다가 뱃전에 올려지는 순간, “에라 모르겠다!” 넉장거리로 누워버린다. 그렇게 펄펄 뛰던 것들이 바닷물과 분리되는 순간, 순한 양처럼 다소곳해진다.
멸치를 가득 실은 통통배는 갈매기 떼의 호위를 받으며 마을로 향한다. “끼룩! 통! 통! 끼룩! 통! 통! 통!” 배의 바리톤 엔진소리와 갈매기의 소프라노 고음소리가 묘한 앙상블로 아침바다를 춤추게 한다.
통에 담긴 멸치는 무력하다. 멸치 떼가 물결 따라 떠돌던 바다는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멸치들은 서로 비늘을 맞댄 채 누워 있다. 손가락만 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책 없이 숨만 깔딱인다.
쌍근리 마을엔 멸치 공장이 있다. 통에 든 날멸치들은 뭍에 오르기가 무섭게 펄펄 끓는 소금물 속으로 던져진다. 섭씨 600도의 염천지옥. 소리 없는 아우성. 살 속에 스며드는 뜨거움. 멸치는 순식간에 삶아진다. 움직임은 멈춰지고, 찰나의 마지막 몸부림만 스냅으로 남는다.
서기 79년, 화산용암에 한순간에 파묻힌 이탈리아 폼페이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술 마시던 사람, 목욕하던 사람, 잠자던 사람, 길 가던 사람이 한순간 얼어붙듯 멈춰 있다. 꼬리치던 강아지, 풀을 뜯던 염소, 꿀꿀대던 돼지가 2000년 가까이 그대로 ‘동작 그만!’ 하고 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김기택의 ‘멸치’에서>
쌍근리 멸치작업장의 어부들은 쉴 틈이 없다. 뱃전의 멸치를 가져오는 사람, 그것을 펄펄 끓는 물 속에 넣는 사람, 삶아진 멸치들을 꺼내 찬물로 헹구는 사람, 헹군 멸치를 건조장으로 옮기는 사람…. 한쪽에선 어부들의 아침 준비에 분주하다. 멸치 그물에 걸린 광어 농어 도다리 감성돔 등을 칼집을 내어 굽고, 멸칫국을 끓이고 멸치회를 버무린다. 커다란 전기밥솥에선 자글자글 밥 익는 냄새가 구수하다.
새벽 5시에 시작된 멸치잡이 작업이 마침내 아침 9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잠시도 멈추지 않던 어부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더니, 하나둘 평상 위 식탁으로 모여든다.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긴 밥, 덤으로 그물에 걸려 졸지에 구워진 생선들, 멸치회, 멸칫국, 김치, 마늘쫑, 무짠지 등 밑반찬. 밥맛이 꿀맛이다. 도시 사람들이 평생 어디서 이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식사가 끝나면 저마다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켠 뒤 담배를 피워 문다.
김등식 어촌계장(45)이 말문을 연다. “조금 있다가 다시 그물을 건지러 나가야 한다. 이렇게 멸치가 많을 때는 하루 종일 들락날락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땐 일주일이 지나도 전혀 기척이 없을 때도 있다. 수입은 한 해 가구당 평균 1400만∼1500만 원쯤 된다. 마을 앞바다에 섬이 있는데 그곳에 낚시공원을 만들고 싶다. 정부에서 좀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마을 방파제도 현재 서쪽 하나만 있는데 동쪽 방파제도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어항이 된다.”
쌍근리에 가면 누구나 멸치잡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전마선을 타고 직접 노를 저어 움직이면서 낚시도 할 수 있다. 요즘엔 숭어 농어 도다리 감성돔 등이 잡힌다. 고기는 저마다 제철이 있다. 회로 먹는 방법도 다르다. 광어는 잡은 뒤 사흘쯤 뒤에 먹어야 맛있고, 전어는 하루가 알맞다. 도다리는 지방질이 없기 때문에 바로 먹어야 한다. 회류성 고기는 2, 3일 숙성시키는 게 맛있다. 졸복은 6월에 독성이 가장 강한데, 이때가 맛이 으뜸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황경기 씨(53)는 말한다. “사람 못난 기 고향 지키고,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안 합니꺼? 난 바다가 좋십니더. 바다에 나가 고기 잡고, 멍게 잡고 그렇게 사는 기 맴이 편합니더. 여태까지 그러키 살아왔고 그게 내 삶인 걸 우짭니까? 난 그냥 내가 태어난 여그서 뼈를 묻을 거라예. 어쩌다가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 집에 가면 며칠을 못 있는다 아입니꺼? 아파트가 너무 답답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손주들은 너무 이뻐서 홀타주고 싶지만….”
거제도는 아래쪽 동남부가 아름답다. 해안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어촌 어항이 숨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해수욕장이 유명한 명사마을, 감성돔 볼락 등 바다낚시 천국인 대포항, 거제해금강을 바라보고 있는 다대포항,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이름난 도장포마을 등이 그렇다.
쌍근리를 끼고 도는 거제남부해안도로는 꿈길 같은 길이다. 거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쌍근리∼저구∼명사해수욕장∼홍포∼여차(약 20km)는 2차로 아스팔트길과 시멘트 길, 흙길이 섞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서도 갈 수 있다. 교통량이 많지 않아 호젓하다. 쌍근리∼명사해수욕장 길(약 10km)은 왕조산(413.6m) 자락을 밟으면서 가는 길이다. 아스팔트와 시멘트길이 번갈아 나온다.
홍포∼여차 코스 4km는 흙길이다. 망산(397m)의 잔등으로 나 있는 ‘전망 좋은 길’이다. 숲이 우거져 그늘이 시원하다. 거제사람들은 이곳을 즐겨 걷는다. 자전거 라이딩도 많다. 망산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망을 보던 산. 그만큼 시야가 확 트였다.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황홀하다.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자전거 바큇살도 저절로 멈춘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쪽빛바다에 해맑게 서 있다. 대병대도 소병대도 가왕도 다포도 대매물도 소매물도가 손에 잡힐 듯 점점이 떠 있다. 아침엔 안개가 비단자락처럼 섬들을 휘감아 아슴아슴하다. 저물녘엔 온통 바닷물이 붉게 물들어 황홀하다.
섬은 산이다. 산이 물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해 그대로 섬이 됐다. 섬들은 바다에 ‘천년묵언’으로 서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는다. 거제도는 여러 산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섬이다. ‘새끼 섬’은 외톨이산이 떨어져 그리 됐을 뿐이다. 거제해금강, 외도, 지심도 등은 외톨이 섬들이지만 모두 경치가 빼어나다.
거제해안 곳곳엔 수천 년 바닷물에 둥글어진 몽돌 밭이 누워 있다. 여차몽돌해변,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선 “자륵∼ 자그륵∼” 밤새 몽돌들의 몸 비비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거제 몽돌들은 둥글어져야 할 게 남았는가? 그렇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도끼날을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늘로 우물을 파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생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간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해안선 길이만 자그마치 386.6km(제주 418.6km)나 된다. 62개의 섬(유인도 10개)이 있으며, 일본 대마도 쪽의 큰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섬 동쪽은 파도가 세지만, 한산섬이 있는 서쪽 통영앞바다는 잔잔하다. 그만큼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나 왜군이나 서로 목젖 같은 곳이었다. 왜군은 이곳을 장악하지 못하면 전라도 남해와 서해로 나갈 수 없었다. 조선수군도 이곳을 빼앗기면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1592년 5월, 이순신 장군은 거제 옥포(현재 대우조선해양조선소가 있음)에 머물고 있던 왜군 26척을 격침하며 첫 승리를 거뒀다. 그해 7월엔 한산섬 앞바다에서 왜군 47척을 격침(12척 나포)했다. 거제도와 통영 사이의 견내량(길이 3km, 폭 180∼400m)을 통해 왜군을 유인해 한산 앞바다에서 싸웠다. 결국 왜군은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견내량은 현재 구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놓여진 곳. ‘바다에 흐르는 냇물’이란 뜻의 ‘갯내’가 변해 ‘견내량’이 됐다.
1597년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거제도 북서쪽에 있는 칠천량해전에서 크게 졌다. 거북선을 비롯한 함선 150척을 잃었다. 칠천량은 현재 거제도 북서쪽 칠천도 부근이다. 결국 조선수군은 호남해안까지 밀려갈 수밖에 없었다. 1597년 9월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명량(울둘목, 해남∼진도)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적함 133척을 맞아 31척을 격파했다. 조선수군이 다시 바다를 장악한 터닝 포인트였다.
6·25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엔 전쟁포로가 17만 명이나 있었다. 당시 거제 주민은 10만 명.
현재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남아 있다. ■ 교통정보
▽교통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나들목∼거제대교 △고속버스=서울남부터미널∼고현(하루 20회 운행, 4시간∼4시간 30분 소요) △기차 KTX=서울∼부산(부산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고현, 장승포, 옥포, 도착 후 시내버스 이용) △비행기=서울김포∼경남사천 △거제 시내버스(거제전역운행)=삼화여객 055-632-2192, 세일교통 055-63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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