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 위에 폴싹 앉은 개구리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몸통이 빨간색인 잠자리들은 연꽃 사이를 헤치며 물수제비 위를 분수껏 난다.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연못 속 세상이다.
이달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근현대 수(繡)의 재현’ 전시. 중요 무형문화재 80호인 자수장 보유자 한상수 씨(75)가 한 땀 한 땀 색실로 자수를 놓은 연못(1999년 작품 ‘연못’)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자수에 대한 연민이 오롯이 배어 있다.
한 씨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시중에 유통됐던 민수(民繡),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전해졌던 안주수(安州繡), 궁수(宮繡) 등의 자수를 이번에 총망라해 선보인다. 이 전시는 한 씨의 자수 한평생을 집약하는 동시에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서사시인 셈이다.
수예 전문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그가 1963년 세운 수공예 학원인 ‘수림원 자수 연구소’는 2005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한상수 자수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우리 자수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2008년부터 자수 전문 지도자반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10명씩 배출해내는 제자들의 작품도 함께 나와 의미가 깊다.
“사람들이 ‘수놓은 듯 아름답다’란 표현을 자주 쓰잖아요. 세상사의 시름을 없애려고, 참을성을 기르려고 수를 놓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절대로 아니에요. 괴롭거나 마음에 한이 있으면 수를 놓지 못해요. 희망에 벅차서, 욕망이 불타서, 작품에 대한 열망에 사로 잡혀서 완성하는 게 바로 우리의 자수랍니다. 전 옷감 한 마를 수틀에 걸고 자수를 놓는 데 평균 다섯 달이 걸리는걸요.”
70대 중반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언행에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에서 여학교를 다닐 무렵 최초의 여자 판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학교 가사시간에 목단 꽃을 수놓은 과제가 1등으로 뽑히면서 자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18세 때 가사과 담당인 박계봉 선생님의 혼례 선물로 만들어 드렸던 자수 퇴침(상자 모양으로 만든 베개)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상봉하게 된 박 선생님이 “네가 자랑스럽다. 네 옛 작품을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귀하게 쓰라”며 제자에게 돌려준 것이다. 빨간 비단에 금사로 놓은 수, 흰 베갯잇을 손으로 한 올 한 올 뜯어 모양을 낸 품새가 놀랍도록 정교하다.
“자면서 좋은 꿈을 꾸기 바라는 우리 조상들은 베갯모에 수를 놓아 장식을 했죠. 이름 모를 들꽃, 토실토실한 토끼, 화려한 공작과 호랑이를 주로 수놓았죠. 낭군과 새댁이 함께 기쁘다는 뜻에서 기쁠 희(喜) 글자 두 개를 붙여 수놓는 것도 성행했어요. 특히 전남 순창에서 수 퇴침이 발달해 순창은 색실의 명산지이기도 하죠.”
경남 통영의 자수는 쇠 장식으로 가장자리 윤곽선을 두르는 게 특징이다. 일제 강점기엔 평수(천에 실 바늘을 찌르고 뺄 때마다 수 땀을 가지런하게 정렬해 수 무늬 표면을 편평하게 수놓는 기법)를 액자로 만드는 게 유행했다. 광복 후엔 추상적 도안을 징검수(두꺼운 재료를 천에 고정시킬 때 주로 사용하는 자수 기법)로 놓은 병풍 액자가 많이 나왔다.
몇 년 전 삼국시대 장인들의 지도로 만들어진 일본의 국보급 자수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을 복원했던 한 씨는 내년엔 경기 이천시에 자수와 천연 염색 등을 가르치는 기예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 동화대에서 고대 방직사 박사가 된 딸 김영란 씨도 그를 돕고 있다. “값싼 중국 수가 한국을 점령하는 요즘 정작 우리 젊은 세대들은 우리 자수의 우수성을 모르잖아요. 국내에 자수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게 가장 안타까워요.”
시인 만해 한용운은 ‘수(繡)의 비밀’이란 시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마음은 수놓은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이번 주말 당신에게 우리 자수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근현대 수의 재현’ 전시 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마음에서 청명한 노랫소리가 울려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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