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을 찢을 듯 쉴 새 없이 연주되는 헤비메탈,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뒤틀며 무대 위를 휘젓는 무용수, 무대 양 옆에 줄지어 선 백색 조명…. 12, 13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초연된 호페시 셱터의 ‘폴리티컬 마더’는 약 7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에게 최대한의 시청각적 자극을 안겨주려 숨 가쁘게 달렸다.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일본 사무라이로 분장한 무용수가 긴 칼로 할복자살하는 장면이었다. “국가와 같은 공적 존재와 개인이 갈등을 겪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안무가의 의도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셱터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2008년 영국비평가협회 선정 최우수 현대무용 안무상을 수상한 젊은 안무가. 그의 첫 전막 작품인 ‘폴리티컬 마더’는 할머니의 전쟁 체험을 모티브로 했다.
무대 안쪽에 설치된 2층 구조물 위층에는 록 뮤지션들과 독재자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아래층에는 군복을 입은 드러머들이 자리 잡았다. 드럼과 기타, 독재자의 거친 고함소리가 폭격처럼 무대를 두들겼다. 드럼 연주자로 활동했고 작품에 사용할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셱터는 음악을 통해 능숙하게 작품의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무용수들은 커다란 집중력으로 에너지를 응축한 채 웅크린 등, 제멋대로 늘어뜨린 팔과 다리로 힘없는 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공연 말미, 2층 무대 중앙에 ‘Where there is pressure, there is folk dance(억압이 있는 곳에 전통무용이 있다)’라는 문구가 드러나고, 무용수들은 문구 아래 늘어선 채 굳게 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억압이 있는 곳에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저항이 있었으며 춤이라는 형태로 분출되기도 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공적 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해 온 사람들의 역사’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기에 70분이라는 시간은 적당하지 않았다. 강렬한 이미지만으로 채우기에는 길고, 기승전결을 갖추기엔 짧았다. 충격적이지만 비슷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불필요한 반복으로 느껴졌다. 핵심 주제를 춤이 아니라 직설적인 글귀로 표현했던 점도 아쉬웠다. 록 콘서트 같은 짜릿한 흥분은 안겨 주었으나 극적 완결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기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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