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역사영상심포지엄.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가운데 마이크 잡은 사람)가 ‘영화로 본 한일관계’에
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도쿄=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의 고아를 돌본 일본 여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영화를 통해 그 주인공(고 윤학자 여사)의 일생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기뻤다. 한일관계에 관한 표면적인 사실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더 많으면 좋겠다.”(미즈타 하루코 씨·40)
19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한국문화원 2층 한마당홀. ‘영화로 말하는 한일관계의 심층’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과 심포지엄 행사에 약 500명이 몰렸다. 이날 행사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도쿄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강덕상)과 서울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함께 마련했다. 영화를 통해 한일관계를 되짚어보기 위한 자리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상영된 영화는 세 편. 1945년 5월 조선총독부 후원으로 제작된 ‘사랑과 맹세’는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한 일본인 장교에게 감동받아 조선 청년들이 특공대를 지원한다는 선전 영화다. 이 영화는 일제의 패망으로 사장됐다가 이날 처음 상영됐다. 일본에서 인권·평화 영화 연출로 유명한 고 이마이 다다시 감독이 이 영화의 공동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일본 중장년층에게 놀라움이었다.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여한 재일동포 오덕수 감독은 “이마이 다다시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실 자체가 시대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1995년 한일 최초의 합작영화로 제작된 ‘사랑의 묵시록’(김수용 감독)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자선사업가 윤치호 씨와 결혼한 일본 여성 다우치 지즈코(한국명 윤학자) 씨의 감동적인 삶을 그린 영화다. 그는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도 전남 목포에서 홀로 고아원을 운영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일본에선 약 70만 명이 봤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등으로 개봉하지 못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는 “인류 보편의 정서인 사랑과 박애에 대한 정신이 한일관계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제작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호타루(반딧불이)’는 1990년대 후반 대중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영향으로 양국에 모두 상영된 영화다. 가마카제 특공대 장교로 죽은 조선인과 일본인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렸다. 이 영화를 보려고 두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다는 주부 이시이 후미코 씨(62)는 “‘호타루’처럼 이념과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다룬 영화가 많아진다면 양국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세 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전쟁과 인간’”이라며 “이 같은 영화를 통해 나라와 민족은 다르지만 평화롭게 상생하고 공영할 수 있는 지혜를 찾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사랑의 묵시록’을 만든 김수용 감독과 영화 속 주인공인 윤학자 여사의 장남인 윤기 숭실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 등도 참석했다. 심포지엄에서는 김종원 씨가 ‘영화로 본 한일관계’에 관해, 일본 와세다대 우쓰미 아이코 객원교수가 ‘국책영화에 그려진 내선일체’에 관해 발표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