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연기의 본좌'라는 별명을 얻은 김명민(38). 그에게 연기로 '태클'을 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어떤 캐릭터가 주어지든 그는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배운 대로 대본에 나타나지 않은 그 캐릭터의 지나간 삶을 종이에 적어 내려가며 캐릭터를 연구한다. 그러나 영화 '리턴' '무방비 도시' 등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모든 것을 거는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스크린에서는 TV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나 매력이 사라지냐"고.
"영화는 1시간 5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끝나는 반면에 드라마는 2, 3개월에 걸쳐 방송이 되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또 영화는 감독의 예술로 감독의 역량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면, TV드라마는 감독, 작가, 배우가 33.3%씩 나누어 갖는 것 같아요."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파괴된 사나이'가 다음달 1일 개봉한다. '파괴된 사나이'는 8년 전 유괴돼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잘나가는 목사였다가 딸이 유괴된 뒤 신앙을 잃고 의료품 수입업자로 살아가는 아버지 주영수 역을 맡았다. 개봉을 앞둔 그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특별히 영화 '파괴된 사나이'를 선택한 이유는.
"유괴는 흔한 소재이지만 '파괴된 사나이'는 다른 유괴 영화와 차별화 된 점이 있었다. 유괴로 인해 한 남자가 서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그 점이 흥미로웠다. 딸을 찾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주영수라는 한 남자에게 끌렸다."
―영화를 보면 유괴범과 주영수의 두뇌 싸움이 부족한 것 같은데….
"기존의 유괴 영화와 자꾸 비교를 하면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 봐왔던 여러 가지 영화적인 설정이나 장치, 반전들이 이 영화에는 하나도 없다. 그런 장치들보다는 주영수의 심장 박동소리와 침 넘어가는 소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오히려 '몰입이 잘 되고 쉽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스크린에서는 TV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김명민의 매력이 사라진다는 지적에 대해 영화는 감독의 역량이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답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감독과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감독이 잘못해서 영화가 이상했다'는 말이니 그것은 아니다. 나한테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TV 드라마는 대본과 방송으로 나오는 부분이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영화는 원래 시나리오만큼 나오기도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단지 작품을 얼마든지 바뀌게 할 수 있는 것은 감독의 힘이라는 뜻이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종우라는 캐릭터보다 김명민의 연기 투혼이 더 도드라져 보였고 화제가 됐다. '연기 본좌'라는 애칭이 오히려 관객들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내 사랑 내 곁에' 그 때 한 번 그랬던 것 같다. 그 때는 홍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몸 상태를 가지고 홍보를 하다 보니 영화에서도 김명민의 몸만 드러난 것 같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 그로 인해 루게릭 병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졌다. 얻는 만큼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CF를 통해 지나치게 이미지를 많이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현재 CF를 다섯 개를 하고 있다. 그 중 세 개는 이미 한 지 5, 6년 된 것들이다. 이미지를 많이 소진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전화 광고 때문인 것 같다. 그 부분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서 그렇게 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그런 캐릭터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웃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