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②]러시아 여행의 필수품, ‘휴대전화’ 그리고 ‘인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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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정:러시아 자루비노(6월8일)~블라디보스톡(9일)-우시리스크(10일)


▶ 반복되는 액땜 (#작성자 심재신·35·중소기업 대표)


세관에서


자루비노 항에 동춘호 닻줄이 내려졌다. 짐 내리기, 입국신고, 짐 검사, 바이크 세관 수속, 바이크보험 가입을 끝냈다. 세관의 컴퓨터 고장으로 약 2시간이 지체됨으로써 자루비노 항을 빠져 나오는데 만 5시간 이상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첫 러시아 주행 '로드(선두)'는 필자였다.

첫날부터 야간주행(밤 10시)을 해버리게 되니 신경이 곤두섰다. 일단 출발했지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바이크 뒤쪽 쇼버를 너무 높여놓아 헤드라이트 조사각이 안 나온 것. 이렇게 되면 너무 짧은 거리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첫날 주행을 규정 속도로만 달렸고 이로 인해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문제는 숙소에 도착해 쉽게 해결 되었으나 두 번째 문제는 감정에 감정을 야기했고 팀원들 간에 분란이 이어졌다. 사건을 풀어 보면 이렇다.

자루비노항을 빠져 나와 정속 주행을 하던 중 팀장인 이민구씨(42·의대교수)가 로드인 내 옆에 휙 나타나 "좀 빨리 가지" 하곤 휙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앞이 안보여 신경 쓰이는데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럼 당신이 로드서던가'란 빈정거림이었다.

우리가 첫 날 가야 하는 슬라비안까의 항구 근처 호텔은 도달 거리는 짧지만 초심자들은 쉽게 위치를 가늠 할 수는 없는 일. '대략 여기쯤 되겠다'는 추측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택시기사에게 물어 간 곳이 엉뚱한 곳이라 유턴, 항구 근처 외각으로 다시 들어가던 중 뒤에서 로드를 앞서가는 라이더가 있었으니 또 민구씨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최태원씨최태원(28·회사원)…. 솔직히 로드로서 짜증이 머리끝까치 치밀었다.

로드를 무시하고 질주하던 이 두 사람은 결국 유턴해서 되돌아왔다. 갈등 시작.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주행 하던 중 러시아 일가족 무리가 등장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되겠다 싶어 바이크를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투로드팀을 도와준 러시아 세 여학생.
블라디보스톡에서 투로드팀을 도와준 러시아 세 여학생.


그들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 했지만 이내 실수를 알아챘다. 가장인 듯 보이는 남성이 만취해 있었고 이내 이방인인 우리에게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 것. 그래도 부인과 아이들도 끼어 있는 가족무리가 얼마나 심하게 할까 싶어 다시 대화를 시도했지만 주정뱅이는 끝까지 시비를 멈추지 않았다.

대원들은 적잖이 불안해했다. 그 사이 민구씨는 다시 한번 지나던 택시를 잡아 길을 물어 보았고. 택시기사가 따라 오라고 하자 로드의 허락도 없이 곧장 따라가는 게 아닌가? 나도 뒤따라가려 했으나…. 무거운 바이크가 경사 길에 서 있어 도저히 세워지지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 어수선한 상황은 우리가 원하던 호텔에 도착하고 택시기사에게 200루블을 쥐어 주고 나서야 마무리 되었다.

카운터에서 방을 예약하고 필자는 팀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도대체 로드라는 직책이 있는데 왜 마음대로 행동을 하냐는 불만의 폭발이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화나게 만들며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물론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출발 전 별다른 액땜이 없던 필자는 이날 큰 액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 위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 위에서


▶ 블라디보스톡에서 해야할 세 가지 일

슬라비안까에서 새벽 6시30분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배를 이용한 이유는 자루비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가 군사지역이라 검문이 심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초기 주행에서 우리에겐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부분이었으나 약 2시간의 항해로 군사지역 통과 없이 블라디보스톡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우선 블라디보스톡에서 할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 현지에서 휴대전화 만들기, 둘째 블라디보스톡 현지 뉴스 방송 인터뷰, 셋째 현지 관광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울 휴대전화 로밍 요금은 1분당 6500원이다. 현지 휴대전화를 구입해서 전화 카드를 이용하면 통신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러시아에서 지체 하는 시간이 많으니 여러모로 이익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없이 구매.

블라디보스톡 OTV(오티비) 라는 곳에서의 인터뷰는 민구씨가 약속한 것이었다. 그저 귀찮은 일정 중 하나라고 생각 했지만 의외로 도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인터뷰 후 방송은 바로 그날 저녁 뉴스에 나왔고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우리들을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 심지어 검문을 받을 때에도 인터뷰 때 내가 언급했던 아이폰 번역기를 보여 달라고 찾을 정도였다.

블라디보스톡 뉴스촬영
블라디보스톡 뉴스촬영


▶ 우시리스크의 선교사들 (#작성자: 이민구)

블라디보스톡에서 우리는 이곳 극동대학의 한국역사학 교수이신 송지나 교수 제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해주는 세 명의 아리따운 러시아 여학생들. 까리나, 크리스티아나, 까냐. 모두가 지한파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또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했다.

우리는 먼저 휴대전화를 요구했다. 가까운 가게에서 890루블(36,000원)에 삼성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유심카드에 1000루블을 충전하고, 국제전화용 카드를 1000루블에 구매하여 통신장비를 갖추게 됐다. 학생들과 가볍게 식사를 하고 블라디보스톡 방송국 올가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는 우리 각각의 인터뷰를 따고 모터사이클의 짐, 출발하는 모습 등을 꼼꼼히 촬영했다. 오늘 8시에 TV에서 방영된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와 작별을 고했다.

블라디보스톡은 서울 못지않게 교통지옥으로 유명하다. 막히는 길로 인해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은 일행 모두의 염원일 것. 고속도로를 만나자 스탠딩자세로 스로틀을 당겨 바람을 맞이했다.

시속 100km로 달리자 곳곳에서 경찰들이 출몰한다. 바짝 긴장하고 말이 안 통하는 경찰에게 서류를 흔들며 얘기하지만 경찰은 서류는 대충 살펴보고 계속 이상한 질문만 건넨다.

결국 한-러 사전을 꺼내 확인한 내용은 "모터사이클이 얼마에요?" "몇cc인가요" "어디까지 갑니까" 등의 사소한 질문이었다. 몇 번의 검문에 같은 질문이었고, 대답해주면 칭찬을 하며 같이 사진 찍는 번거로움을 반복했다. 당초 러시아 경찰은 뇌물을 많이 요구한다고 충고를 들었지만 적어도 이들은 우리의 여행을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친구들이었다.

우시리스크에서 우리 일행은 러시아행 배(동춘호)안에서 우연히 만난 선교사와 목사들이 운영하는 개척교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니 목사 한분이 예배중인데 들어와서 인사를 하라고 청했다. 앞에 나아가 소개와 인사를 하니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해 주셨다.

다음날 떠날 때까지 이분들의 정성스러운 식사 대접과 안전을 위한 기도는 계속되었다. 이분들의 선교활동을 보며, 구한말 한국의 여러 외국 선교사들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국말을 모르는 파란눈의 목사와 선교사들이 낮은 수준의 통역에 의지해 설교와 성경을 전하는 모습 말이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의 인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러시아 우시리스크 = 투 로드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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