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칼이 있는 머리에는 두뇌가 없다.”(몽골) “여자에겐 긴 머리와 짧은 정신이 있다.”(스웨덴) “긴 머리, 작은 두뇌.”(터키) 여성의 머리칼과 지능에 관한 속담들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지만 비유의 방식이나 담고 있는 뜻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속담 중에는 유난히 아내와 처녀, 결혼이나 사랑 등 여성에 관한 것이 많다. 이종(異種)문화 간 문학연구를 해온 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의 여성에 관한 속담을 분류, 정리하며 공통적으로 내재돼 있는 성차별적 코드를 읽어낸다.
속담 속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행한 존재다. “아들 부자는 신의 커다란 축복이요, 딸부자는 커다란 불행”(독일)이며 “딸이 태어나면 심지어 지붕조차 운다”(불가리아)는 등 딸을 낳은 부모를 위로하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첫째는 딸, 다음엔 아들”(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맏딸은 살림 밑천”(한국)이며 “맏딸은 어린 동생을 돌보는 보모”(베트남)라는 속담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하며, 여성은 노동력으로서만 가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과도하게 몸치장하는 여성을 담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풍자화. 속담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훌륭한 소개장’(독일)이라고 칭송하면서도, 잘 차려입은 여성에 대해서는 ‘가장 추한 여성’(포르투갈)이라고 비난했다. 사진 제공 북스코프“여자의 눈은 한창 청춘기 남자한테 화살과도 같다.”(그리스) “여자는 눈으로 묻고, 받아들이고, 경멸하다, 죽인다.”(스페인) “아름답고 커다란 눈은 레몬보다 더 얼얼하게 자극한다.”(쿠바) “지옥은 아름다운 여성의 속눈썹에 들어 있을지 모른다.”(이스라엘) “너무 아름다운 시선은 눈을 낚아채 간다.”(일본)
여성의 눈은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속담의 기원이나 비유법은 달라도 여성의 눈에 강력한 힘을 부여하고 그 위험을 경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례들은 속담을 창작하고 발화하는 쪽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준다. 저자는 “대부분의 속담은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에 대해 논평하거나 남성의 특권과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반면,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을 판단하는 속담은 매우 드물다”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경향은 아내에 대한 속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내는 대개 칭찬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7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를 칭찬하지 말라”(러시아)거나 “그대가 아내를 사랑한다면, 죽은 뒤에만 칭찬하라”(미얀마)는 식이다. 이런 말의 근거는 바로 아내에 대한 불신에 있다. “여자는 남자를 속인 직후 가장 상냥”(미국)하기 때문에 “여자나 수도꼭지를 믿는다는 건 불가능하다”(영국)는 것이다. 속담은 때로 “그대 어머니 눈초리가 감시하고 있는 동안만 아내를 신뢰하라”(일본)고 조언하기도 한다.
속담 중에는 아내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아내를 정기적으로 때려라. 그대가 이유를 모른다 해도 아내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서아프리카) “아내를 늘씬 두들겨 패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나은 음식을 주신다”(러시아) “사랑이 좋으면 채찍도 좋다”(미국) 등이다.
물론 아내를 구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속담도 있다. 하지만 “아내를 때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재산을 치는 셈이다”(유대족 쿠르드어 속담)라며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로 파악하거나 “아내를 몽둥이가 아니라 다른 아내들로 때려라”(북부 아프리카)는 식으로 폭력 대신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아내의 처지를 이용해 처벌하라는 식의 속담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속담 속에서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여성에서 독립하려는 남성의 몸부림으로 파악한다. 남성은 누구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며 강한 일체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년은 남자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여성에게서 벗어나야만 남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잇따른 사회화가 어린 소년을 억센 ‘남성성’을 추구하도록 압박한다면, 이는 여성적 활동을 평가절하하고 남성의 지배력이 강한 사회에서 아주 명백한 남성적 역할의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를 발전시키도록 이끌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남성이 속담을 통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격하함으로써 자신감을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총명한 여자가 말하면 그대는 한마디 말도 못할 것이다”라는 러시아 속담처럼 여성에 관한 속담 속에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여성에 관한 속담 대부분은 성차별적 시각을 담고 있으며 현대사회에 적절히 들어맞지도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다고 속담을 거부하거나 읽지 않으려는 것은 “근시안적 반응”이라고 지적한다. 속담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연구와 분석을 통해 속담 속에 이어져온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일상적 대화로서 속담의 가치는 현대에도 유지되고 있다.
“속담에 표현된 성차별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러 사회에서 일상적 대화의 중요한 몫을 담당해 왔고, 여전히 그러하며, 이를 통해 성별 차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유산과 정체성이 틀 지워지기 때문이다. …속담은 인간성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가득 찬 문화사의 일부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전통’의 어느 부분을 자식과 손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지 결정하기 전에, 그 교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세계 각국의 여성 속담
긴 머리칼이 있는 머리에는 두뇌가 없다 ―몽골
여자나 수도꼭지를 믿는다는 건 불가능 ―영국
여자는 남자를 속인 직후 가장 상냥하다 ―미국
7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를 칭찬하지 말라 ―러시아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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