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등단한 시인이자 올해로 26년째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48)가 ‘책 사용법’을 썼다. 편집자와 독자로서의 경험을 버무려 책이 주는 위안, 책을 읽는 이유, 책이 주는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단순히 감상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책’ 52권을 인용해 가며 책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책과 멀어지는 세태가 안타까웠는지 독서는 경제적 효용 측면에서도 결코 손해 보는 행위가 아님을 곡진하게 그렸다.
짧은 말이나 글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게 한계가 없을 수 없지만 왜 하필 제목이 ‘책 사용법’일까. 내용과는 달리 ‘자기계발서’ 같은 즉물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물어봤다.
“중의적인 제목이다. 책은 생필품처럼 ‘사용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책에 깃들어 있는 무겁고 대하기 어렵다는 이미지와 달리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책을 사용하는 법을 잘 익히면 무한의 세계가 열린다는 뜻도 전하고 싶었다.”
책의 중요성을, 효용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그는 자기 이야기를 단정하게 풀어낼 뿐이다. 자신이 전율을 느끼며 마주하게 된 책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하다. 20여 년 전 대학 재학 시절 조우한 ‘김수영 전집’이다.
그는 “지금도 나는 수시로 그의 시 전집을 들추며 봄날에는 ‘봄밤’을, 외로운 날에는 ‘달나라의 장난’을, 사랑이 필요한 날에는 ‘사랑의 변증법’을, 투지가 필요한 날에는 ‘풀’이나 ‘폭포’를 낭송하며 큰 위안을 받고 있다”고 썼다.
책이 주는 재미는 ‘에로틱’ 못지않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책을 읽으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다른 세계로 몰입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일본으로도 가고 고대 이집트로도 간다. 이건 분명 풍요로움이다.”
그런데도 왜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까. 그는 “책을 처음 접할 나이 때 우리 사회가 책을 신성시하고 생산적인 도구로만 주입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더라도 빼앗지 말고 그들이 책과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책은 지식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오락의 대상이기도 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말이 이어졌다. “책에 담긴 지식은 주식 정보처럼 당장 유용하지는 않더라도 삶을 해석하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삶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고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를 위로하는 것도 책만 한 것이 없다.”
그는 ‘노자’를 읽고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는 지인의 얘기를 바탕으로 ‘치유로서의 책’의 기능도 들려준다.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는 철학이 소용없듯이 책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은 사색과 영혼의 위무라는 방식으로 삶을 새롭게 보게 한다.”
그는 이번에 낸 책을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 없이도 저는 잘살 수 있어요’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발랄함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속내를 드러내서라도 책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위안을 구하는 자는 행복하다’며 책의 말미를 이렇게 장식했다.
“최근 우주론에 관한 일련의 책을 보면서 초신성, 빅뱅, 평행우주, 초끈이론, 통일장이론 등을 나름대로 사유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등바등 사는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다른 차원을 꿈꾸게 됐다.”
‘독서의 기술’(모티머 J 애들러 외),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추락’(J M 쿠시) 등 새 책에서 인용한 책은 별도의 목록을 만들어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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