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은 현대 한국 사회에 들끓는 욕망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타워팰리스로 대변되는 고급주택과 부동산 열풍, 소비문화의 첨병인 명품 거리, 극성스러운 사교육….
우리 사회 안팎은 어떤 식으로든 ‘강남의 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계층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한국인 삶에 배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 꿈의 기원은 무엇일까.
소설가 황석영 씨(67)가 ‘개밥바라기 별’ 이후 2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강남몽’(창비)에서 그 이면의 역사를 밝혀낸다. 무분별한 개발주의에 경종을 울렸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소설 속의 ‘대성백화점’)를 주요 소재로 삼아 3·1운동 직후부터 6·25전쟁과 5·16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요 등장인물의 삶 속에 녹여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작가는 “강남 형성사를 쓰겠다고 생각한 건 몇십 년 전인데 대하장편이나 정색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쓸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이제야 숙제를 풀게 됐다”며 “한국 자본주의의 그늘과 근대화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대성백화점 회장의 후처로 강남 상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화류계 출신의 박선녀, 시대에 따라 일본의 밀정, 미국의 정보원 등으로 활약하며 부를 거머쥐게 된 김진 회장, 정치권과 결탁했다 버림받은 폭력조직의 홍양태…. 이들의 개인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우울했던 여로와 고스란히 겹친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존 모델의 이름, 행적에서 약간씩 변형을 가한 이들이며 박정희, 김구, 여운형 등은 실명 그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뒤늦게 공개된 해외의 기밀문서들, 신문자료 등을 참고로 해 80%가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며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부분 외에는 모두 사실에 근거해서 썼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스케일 큰 사건들을 인물을 통해 풀어낸 서사의 흡인력은 황석영 특유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삼풍백화점 붕괴 무렵이 중요한 시기라고 봤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출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의 종언, 문화적으로는 소비사회의 도래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가 등장하던 시대였거든요. 1990년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욕망, 좌절의 흔적들이 그 시간 속에도 그대로 있어요.”
소설에서 묘사되는 강남형성사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야합과 분열, 상처로 얼룩져 있다. 그는 “어느 나라든 근대화 과정에는 상처와 분열이 있기 마련이다. 중립적으로 썼는데도 쓰고 보니 불온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며 “하지만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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