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터시는 바로 우리가 ‘축제’라고 불렀던 우리 문화의 의례와 놀이 속에서 느꼈던 신명(神命)이다. 바로 ‘신명 난다’는 말 그 자체이다. 신명은 말 그대로 ’신이 내린 명령‘이다. 곧 ‘신이 자신을 즐겁게 하라고 내린 명령’이다. 그러면 그 대가로 신은 그것이 풍년이든 다산이든 혹은 화재 수재 풍재와 같은 삼재를 막아주든 무엇인가 보상해준다는 것이다.”》신나고 황홀해야 진짜 축제
성공적 축제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책에는 그 필수 요소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 담겨 있다. 핵심은 엑스터시, 황홀경이다.
“엑스터시는 그리스어 ek, exo(∼의 밖으로)와 histanai(놓다, 서다)의 복합어인 엑스타시스(ekstasis)에서 나온 것으로 ‘밖에 서다’란 뜻을 지닌다. 이것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 있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며, 일상적인 의식수준이 저하되면서 빠져드는 망아(忘我)상태 또는 황홀상태에 빠져듦을 말한다. 말 그대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압도적 정서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상태, ‘자신의 바깥에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축제는 본질적으로 종교적 제의와 의례에서 출발했다. 축제라는 말 자체가 ‘축하하며 제(祭)를 지냄’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신과의 합일을 통해 군중을 통합하는 대동(大同)과 노동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일탈과 전복의 시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축제에선 종교적 의미가 퇴색했다. 하지만 신과의 합일이 이뤄질 때의 무아지경을 희구하는 심리는 여전하다. 오늘날 축제의 성공 여부는 이러한 황홀경을 어떻게 재생산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연세대 축제문화연구센터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저자의 통찰이다. 그렇다면 탈종교화된 축제에서 어떻게 황홀경을 끌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도구를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은 곧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 사유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 종교적 인간(호모 렐리기오수스)”라는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저자는 오늘날 축제에선 놀이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고 주장하면서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호모 루덴스’의 저자)와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놀이와 인간’의 저자)의 이론을 축제에 적용한다.
카유아는 놀이를 아곤, 알레아, 미미크리, 일링크스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아곤은 스포츠처럼 ‘힘과 기교를 겨루는 놀이’다. 알레아는 주사위 놀이처럼 ‘운을 실험하는 놀이’다. 미미크리는 가장무도회처럼 환상을 모방하는 ‘모방행위 놀이’다. 일링크스는 팽이 놀이나 회전목마 같은 ‘현기증 놀이’다.
성공적인 축제가 되기 위해선 이런 놀이성이 적절히 가미돼야 한다. 이에 따르면 소와 함께 거리를 질주하는 산페르민 소몰이 축제는 아곤형 축제이고 가장행렬로 유명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은 미미크리형 축제다.
그러나 이런 놀이이론을 축제에 적용하는 것이 갑자기 중단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엑스터시를 창출하느냐에 따라 ‘신과의 교감’ ‘전투형태의 놀이’ ‘디오니소스적 오르지(통음난무의 잔치)’ ‘아폴론적 예술’이라는 4개의 범주로 여러 축제를 재분류한다. 놀이이론을 펼쳐놓고선 아곤형 축제만 남겨두고 다시 신화적 해석으로 건너 뛴 느낌이다.
이론적 모색에 열중한 탓인지 일관성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축제 사례가 여기저기 겹쳐 등장하는 탓에 다소 혼란스럽다. 하지만 우리의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대동(大同), 일탈, 전복, 재미, 환상이라는 축제의 본질적 요소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통찰은 충분히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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