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⑤] 상처치료를 위해 바이칼을 포기하다

  • Array
  • 입력 2010년 7월 7일 11시 03분


■ 일정 : 러시아 마고차(6월15일)-치타(6월16~18일)

치타에 도착한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파손된 모터사이클을 수리하느라 잡아먹은 시간을 벌충하려고 이틀 연이어 700km를 달렸다. 새벽 일찍 마고차를 출발해 오전부터 너무나 졸렸다. 길가에 눕자마자 5분 만에 꿈을 꿀 정도로 깊은 잠을 잤다.

시베리아의 모기 때문에 라이딩 장비를 입고 헬멧도 쓰고 잤지만 장갑은 벗고 있었다. 다시 장갑을 끼려는데 왼손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작은 피가 맺혀 있었다. '모기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지만 한 시간 가량이 지난 후부터 왼쪽 팔꿈치가 욱신거렸다.

치타에 도착해 자미라의 도움으로 숙소를 잡는 동안 만나게 된 치타의 라이더들과 방에서 맥주 한 캔과 말린 생선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그러던 중 밝은 불빛에 상처를 보니 심상치 않았다. 왼쪽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은 상당히 부어 있었고 왼팔의 안쪽으로 붉은 줄 하나가 쭉 생긴 것을 보니 혈관염 아니면 임파선염이 생긴 모양이다.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에서 만난 러시아인들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에서 만난 러시아인들

▶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어버린 팀닥터의 손가락

일단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봉와직염이다. 일단 항생제를 챙겨 먹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팀에 합류할 때 필자는 의사란 직업을 활용해 팀의 의학적 안전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에 두 가지를 준비했다. 사고로 급한 외상이 있을 경우 후송 전에 해줄 수 있는 것들과 내과적 질환이 생긴 경우 치료를 하고 팀원들의 목표인 완주를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약이었다.

약을 준비하면서 어디까지 준비를 하고 내가 치료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신경 쓴 부분이 봉와직염이다. 장화나 장갑을 오래 끼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손과 발의 작은 상처는 장갑과 장화 안에 득실거리는 균들을 만나 봉와직염으로 진행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장화와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우리는 고위험군이다. 봉와직염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는 팀원이 생기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바로 필자에게 봉와직염이 생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좀 더 진행되었다. 부종은 손을 넘어 팔뚝으로까지 진행되어 시계를 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행이 이곳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사진을 찍어 학교병원 피부과 의사에게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봉와직염일 가능성이 높네요"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일종의 텔레메디신(tele-medicine:원거리 의료행위)을 시현해본 것이다. "어떻게 치료할까?" "항생제 쓰고 손을 가능하면 쓰지 마셈" "내일 500km 운전해야하는데, 클러치를 100번은 잡았다 놨다해야해" "ㅠㅠ, 붓기 빠지는데 2주정도"….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은 후 고민했다. 일단 치료는 어제부터 시작했고, 필요한 약은 다 가지고 있다. 예정대로 내일 아침에 떠날지는 오늘 밤에 결정하자.
러시아 시베리아의 남동부 도시 치타
러시아 시베리아의 남동부 도시 치타

▶ "바이칼호를 못 봐도 좋으니 치료하고 갑시다"

팀원들도 내 손을 보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붓기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이제 손은 터질듯이 부어있고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은 구부릴 수가 없다. 근육주사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까지 사용했지만 내일 출발은 무리다. 팀원들과 회의를 했다.

"봉와직염이다. 치료는 하고 있지만 손이 부은 것 때문에 내일 출발하더라도 멀리는 못가고 천천히 가야한다. 그렇다고 내일 출발을 못하면 바이칼호수 보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몽골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
봉와직염에 걸린 필자의 왼손
봉와직염에 걸린 필자의 왼손

이미 내 손을 보고 있었으니 많이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바이칼을 못 봐도 좋으니 치료하고 갑시다."
"내일 병원을 가보는 것이 어때요?"
동료들이 주저하지 않고 바이칼을 포기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손은 더 부어 있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의 표피에서는 압력에 못 이겨 진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모두 전혀 굽힐 수가 없었다. 팀원들은 병원을 가보라고 권했다. 주치의에게 병원을 가보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걱정이 되었나보다.

내심 러시아 병원구경을 구경하고 싶어 자미라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에서는 의사와 선생이 가장 돈을 못 버는 직업이란다. 그래서인지 자미라는 여기 의사가 늘 화난 표정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의사는 내 팔을 보더니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혈액검사기기와 소변검사기기는 주변에 없었다. 한 명의 병리기사가 혈액을 슬라이드에 묻혀 현미경으로 혈구의 숫자를 세고 있을 뿐이었다.

흡사 1970년대 우리나라 병원 같았다. 다행히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결과는 정상이다. 어제 처치한 항생제가 제대로 작동한 것 같다. 의사는 내게 5일 동안 매일 병원에 오라고 권유하며 그렇지 않다면 치료를 거부했다는 문서에 사인을 하고 나가라고 했다. 내일은 떠나야 하기에 그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칼을 포기하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칼을 포기하다


▶ 의사가 가장 먼저 아픈 상황, 이를 인내해준 고마운 팀원들…

자미라의 도움으로 번역을 해보니 러시아 의사도 봉와직염이라고 진단하고 내가 먹던 것과 똑같은 약을 처방했다. 러시아는 병원치료가 무료란다. 외국인에게는 돈을 받지만 이 작은 도시에 외국인이 진료를 받는 경우가 흔치 않아 이를 위해 계산대를 따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처방전으로 약국에 가서 만원을 내고 약을 받아 팀원들에게 갔다.

서둘러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소변을 통한 독소의 배출이다. 체액 량을 늘려 신장으로 독소를 빼내야 한다. 즉 몸을 씻어내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흔히 맞는 링거 주사의 효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는 정맥주사를 맞을 수가 없으니 먹어서 그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마트에서 사온 물 5L에 밥수저로 6개정도의 소금을 넣는다. 이러면 0.3% 소금물이다. 흡수되면 링게르(생리식염수) 1.6L를 맞은 효과가 있다. 마시기 위해 설탕을 넣는다. 달달한 맛이 날 정도까지 설탕을 넣은 후 들고 다니면서 계속 마셨다. 소변량은 급격하게 증가하여 하루 동안 10번 이상의 소변을 보았다.

그날 밤 팀원들이 "손 붓기가 많이 빠진 것 같다"고 축하했다. 실제 손가락을 움직이며 붓기가 빠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문제는 내일 아침 검지와 중지를 구부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를 위해 무려 3일을 치타에서 보낸 우리는 모두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 아르헨티나 전을 봤다.

다음날 아침 붓기는 더욱더 많이 빠졌고, 무리 없이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니 다른 팀원이 봉와직염에 걸렸다면 어땠을까? 팀원들이 나와 내가 판단한 치료를 믿고 따라 줄까? 대답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팀원 한 명을 위해 그렇게들 고대했던 바이칼호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팀원들에게 너무도 고맙다.

출발부터 찰과상으로 시작된 부상은 손목 부상, 늑골 부상으로 모든 팀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앞으로 더욱 신중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투로드팀-진행방향-치타
투로드팀-진행방향-치타


치타 = 이민구(유라시아 횡단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