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국악인들이 잊혀져 가는 전통 연희를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광대놀음극 ‘아비 찾아 뱅뱅 돌아’는 전통놀이인 버나놀이(대접돌리기)를, ‘황제, 희문을 듣다’는 재담(才談)을 중심으로 한 조선 말∼대한제국기 궁중 연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 버나놀이를 비롯한 국내외 기예를 한자리에
광대놀음극 ‘아비 찾아 뱅뱅 돌아’의 공연 포스터에서 배우 6명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뛰어오르며 웃고 있다. 인천 강화군 동검도에서 촬영한 사진작가 사타의 이 사진은 유쾌하고 실험적인 극의 성격을 드러낸다.
연희집단 ‘더 광대’가 만든 이 작품은 5월 의정부 음악극축제에 초대됐고, 이달 말 밀양국제연극제에도 초청됐다. 전통 연희판에서 부수적인 곡예로 취급돼 오던 ‘버나’를 극의 정면에 내세웠다. 납작한 대접 모양의 ‘버나’를 꼬챙이나 곰방대로 돌리는 버나놀이는 풍물(농악), 살판(텀블링),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 등과 함께 남사당놀이의 여섯 종목을 이룬다. 공연에선 지름 2m의 대형 버나도 등장한다. 서커스에서나 나올 법한 저글링,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는 이집트의 전통 춤 ‘수피댄스’ 등도 선보인다.
김서진 연출가는 “배우들 가운데 고성오광대 이수자들이 많은데, 특히 버나놀이를 좋아해서 이를 중심으로 창작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방석이나 책상을 돌리는 연습도 했는데 극에서는 저글링과 수피댄스 정도만 추가했죠.”(웃음)
극이 택한 신화적 이야기 구조는 각종 연희를 한 줄거리로 녹여낸다. 신통력을 타고난 주인공 ‘붉은점’이 어머니를 잃은 뒤 홀로 짐승처럼 자라다가 세 명의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점차 인간의 모습을 띠고 사랑까지 찾는다는 내용이다. 2만∼3만 원, 22∼25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544-1555
○ ‘대한제국기 코미디’ 재담소리 재현
연산군에게 공길이 있었다면 고종황제에게는 박춘재(1881∼1948)가 있었다. 경기소리 공연 ‘황제, 희문을 듣다’는 고종의 총애를 얻어 17세의 나이에 궁중 연희를 관리하는 가무별감 자리에 올랐던 박춘재의 ‘재담소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재담소리란 재담과 소리를 섞어가며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총감독과 배우를 겸한 이희문 씨는 “박춘재 선생님의 재담소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을 살펴보려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경기민요의 노랫가락이 궁중으로 들어가면서 원래 가사였던 무당 관련 내용이 빠지고, 양반이 쓰는 평시조로 대체되는 과정 등도 극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재담소리 외에도 다양한 시도가 등장한다. ‘사랑-이별가’ 장면에선 소리꾼 박애리 씨가 시해를 당한 명성황후를 위로하는 판소리를 선보이고, 이 씨는 무당으로 변해 넋을 위로한다. ‘개 넋두리 & 각색 처녀장사치 흉내’ 장면에서는 보신탕에 대해 넋두리를 하는 개의 모습과 처녀 장사치들이 물건 파는 모습을 통해 현대를 풍자한다. 공연은 총 9개 장면으로 나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다.
현경채 국악평론가는 “박춘재 선생의 재담은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코미디로 계승됐다. ‘황제, 희문을 듣다’는 이젠 낯설어진 재담을 다시 끌어낸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2만5000∼3만 원, 17∼1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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