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 이헌정 씨가 섰다. 흙냄새, 나무 냄새가 나는 그곳엔 시골 마을의 장독대처럼 우리 도기들이 정답게 놓여 있다. 그는 도예에서 시작해 설치미술, 가구, 건축까지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개성 넘치는 노란색 플라스틱 안경테와 세련된 작품을 보면 도회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막상 대화를 하면 소탈한 성품이 드러난다. “양평에 살다 보니 서울에 술 마시러 가면 대리운전비가 아까워 가급적 늦게까지 마셔요. 제 별명이 불나방이에요.”
‘이헌정’이란 이름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 건 올초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한국의 미’란 우리 그릇 전문가게에서였다. 흰색 백자토로 만든 네모난 그릇은 접시라고 하기엔 꽤 키가 높아 두부 같은 모양새였다. 용도를 묻자 점원은 “치즈나 조각 케이크를 올려 내면 어떻겠어요”라고 했다.
온갖 기교에 통달하고 나면 결국엔 비움의 단계에 오르는 스타일의 고수, 그것이 그 그릇의 첫인상이었다. 극도로 정제된 세련미가 마음에 들어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점원은 “이헌정이란 유명 작가가 만들었어요. 이분이 만든 도자기 테이블과 벤치를 지난해 스위스 바젤 디자인 페어에서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사 갔죠”라고 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미술 애호가 브래드 피트가 한눈에 반했다는 이헌정….
얼마 후 화병을 장만하러 다시 ‘한국의 미’를 찾아갔다. 지나치게 장식에 치중한 유럽산 유리·도자 화병을 여럿 둘러본 후였다.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메이드 바이 이헌정’ 흰색 백자토 화병에 또 시선이 꽂혔다. 벨기에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순백색 구조미를 연상시키는 그 화병은 “나, 코리아 디자인이에요”라고 대놓고 외치지 않으면서도 뭔가 할 말을 많이 품고 있는 듯했다. 흰색인데도 꽤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직원이 말했다. “핸드 메이드라 딱 두 개가 매장에 나왔는데, 한 개는 일본에서 화훼를 공부한 여성 플로리스트가 이미 사 갔어요. 동서양의 매력이 모두 있다면서요.”
서울 신라호텔 관계자에게서 “우리 호텔의 가장 비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유명 작가 작품 47점이 있는데 그중 한국인으로는 이헌정 씨의 가구가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양유업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 ‘일 치프리아니’, 서울 남산 소월길에 있는 한식당 ‘품’ 등 스타일리시한 식당들에서는 오래전부터 그의 그릇을 사용해 왔다는 말도 들려왔다. 품격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스타였다. 그뿐인가. 총길이 168m, 높이 2.4m의 세계 최대 도자 벽화로 서울 청계천의 명물이 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도자 벽화도 그의 작품이란다. 이헌정(43),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 이헌정을 만나러 가는 길
검색 사이트에 ‘이헌정’을 입력하니 그의 홈페이지(hunchunglee.com)가 나왔다. 경기 양평군에 있다는 주소와 휴대전화 연락처까지 친절하게 소개돼 있었다. 오전 이른 시간에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자 수화기 너머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내였다. “원하시는 날짜에 인터뷰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씨) 작품 사진은 전속인 ‘갤러리 서미’를 통해 받으실 수 있게 조치할게요.” 똑 부러지는 말투와 일처리로 짐작건대, 그녀는 남편의 매니저 역할을 일정 부분 맡고 있는 듯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서미는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 창구로 지목한 곳으로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국내 최상류층 마니아 컬렉터들을 고객으로 둔 갤러리다. 홍익대 도예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조각 전공)을 나와 1996년부터 도예와 설치미술 작품 전시를 해 온 이 씨의 저력을 알아보고 2008년 말 그를 전속작가(가구 부문)로 ‘모신’ 게 바로 홍송원 갤러리 서미 대표다. 지난해 스위스 바젤 디자인 페어, 올해 미국 마이애미 디자인 페어에서 이 씨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컨템포러리 아트 가구 디자이너’로 도약하게 된 데는 갤러리 서미의 영향력도 큰 몫을 했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이 씨는 콘크리트를 여러 번 광내고 네 모서리를 둥글린 테이블, 도자기로 만든 스툴(등 없는 의자) 등 소재를 변화무쌍하게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갤러리 서미 측은 “컬렉터에 대한 정보는 비밀”이라며 고객층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이 씨가 만든 테이블은 1000만 원대 이상, 스툴은 개당 100만 원대 이상이라고 귀띔해줬다.
이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비게이션에 ‘전일교회’를 찍고 오시면 근방에 저희 집이 있어요.” 모던했던 제품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정답게 들려왔다. 8일 서울 도심으로부터 한 시간여 운전하니 전일교회가 나왔고, 다시 그의 안내를 들으면서 숲길을 운전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니 2310m²(약 700평) 대지에 들어선 흰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나왔다. 작품을 한 점씩 팔아 모은 돈으로 손수 지었다는 그의 집 겸 작업실이었다.
양평=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 작품과 제품 사이… 오늘도 그는 여행을 꿈꾼다
올해 3∼5월 미국 뉴욕에 있는 R20 센추리 갤러리에 서 열린 ‘코리안 컨템포러리 디자인’ 전시에 선보인 이헌정 씨의 벤치 작품. 앉는 부분은 콘크리트, 항아리 모양의 받침대는 세라믹 소재다. 사진 제공 갤러리서미
○ 전방위 디자이너, 예술을 말하다
집 내부는 인간적 냄새가 물씬한 아늑한 갤러리 같았다. 그의 콘크리트 테이블과
도자기 의자, 유명 사진가 김중만 씨가 찍어준 이 씨의 사진, 한국 전통 패브릭 디자이너인 모노컬렉션 장응복 대표가 이사 기념으로
선물한 자개장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지난해까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일했다는, 남편의 홍익대 도예과 2년 후배라는 그의
아내 조현주 씨가 백자토 머그 컵에 커피를 담아 인절미 떡과 함께 내왔다. 회색 콘크리트 테이블은 쓰다듬을수록 우리나라 계곡에
있는 돌멩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노란색 플라스틱 안경테를 쓴 이 씨가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스위스 바젤 디자인페어에 선보인 이헌정 씨의 도자기 스툴(등 없는 의자). “손으로
만져지는 아날로그 느낌을 좋아해요. 최근 가족과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땐 한 빈티지 가구상으로부터 산업혁명 시대의 조명과
철제 의자를 샀어요. 전 테크노마트에서 5만 원 주고 산 중고 휴대전화를 쓰고 인터넷도 잘 안 보는 ‘컴맹’이지만 망치, 양초,
볼트 같은 소재들에서 영감을 얻는 걸 즐기죠.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세계의 거대 생산 공장’ 중국의 영향으로 몇 년 새 유럽
디자인이 고전했는데, 요즘 다시 수공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에요. 기계 공산품의 질적, 미적 저하를
가져온 산업혁명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생겨났던 아트 앤드 크래프트(Arts and Crafts) 운동의 부활인 셈이죠.”
가구를 만들기 전 그는 크게 도예와 설치미술, 두 가지의 작업을 했다. 도예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설치미술은 예술적 감수성을
위해서였다. 그는 “도예는 손을 놓아야 할 때 더 집착 말고 놓아야 하는 것, 설치미술은 관념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라며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전 양평에 집을 짓고 그 안에 가구를 만들어
채워 넣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오래전부터 가구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에 기능적
보완을 해 만들면 결국 가구가 되는 거였다.
이헌정 씨가 디자인한 도자기 세면대. 그가 지금까지 열어왔던 숱한 전시들의 제목엔 유독
‘여행(Journey)’이 많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예술의 여정이다. 도예, 설치미술, 가구 그리고
건축까지(그는 몇 년 전 늦깎이로 입학한 경원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최근 끝냈다). 단, 대부분의 작품엔 이름을 달지 않는다.
이른바 ‘무제(Untitled)’다.
“제목을 달면 사람들이 그 제목의 틀 속에 갇혀 버리잖아요. 때로는 예술이란
장르가 참 허풍스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전 직관에 따라 제가 좋아하는 걸 만들 뿐인데, 사람들은 한껏 진지하게 묻죠. ‘이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언젠가는 라디오에서 6·25전쟁 특집방송이 나오기에 만지작거리던 흙을 군인 모양으로
만들어봤어요. 그랬더니 누군가 ‘반전(反戰) 사상을 담았느냐’고 묻더라고요. 난감했어요.” 쓰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듯 이
남자, 자신의 예술 작품과 솔직담백한 느낌이 어쩜 그리 닮았는지….
○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그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달 항아리들은 나무 선반 위에도 놓여 있지만 일부 큰 항아리들은 마치 어느 시골 마을의 장독대
풍경처럼 그저 수북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그는 전시를 할 때도 종종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둔다고 했다).
도자기로 만든 스툴의 옆면엔 익살스러운 사람들의 표정이 동화처럼 그려 있기도 했다. 형형색색 칠한 어른 키 두 배 높이의 도자기
조각상을 가리키며 이 씨가 말했다. “제주에 별장을 갖고 있는 어떤 분이 이 조각상을 구입해 굴뚝으로 사용하려고 한대요. ‘누구
집에 물방울 그림이 있으니, 나도 집에 들여 놓아야겠다’는 과시적 태도가 아니라 그분만의 개성적 감성이 있는 것 같아 기뻤어요.
굴뚝은 싸구려란 인식을 날려 버린 거잖아요.”
이헌정 씨와 아내 조현주 씨가 8일 경기 양평의 집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술계와 산업계의 30대 ‘젊은 파워’들도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홍송원 대표의 차남인 박필재 서미앤투스 이사는 “예술의 영역을 규정짓는 건 무의미하다”는 이 씨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부용 대림산업 전 부회장의 아들인 이해영 대림비앤코(욕실 전문기업인 옛 대림요업) 사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에
이헌정 씨의 위생도기(변기) 설치작업을 전시하고 있다. 콘크리트 벽면에 변기가 90도 회전돼 매달려 있다. 이 씨는 “항상 바닥에
놓여 있던 변기를 벽에 다는 것만으로도 시각적 충격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여행을 떠난다. 유명 패션 브랜드 ‘질샌더’가 유니클로와 손잡고 ‘+J’란 대중적 브랜드를 만들었듯, 그도 최근
‘바다(BADA)’라는 실용적 도예 브랜드를 만들었다. 관념을 충실히 담아야 하는 ‘작품’과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는
‘제품’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주상복합건물 ‘부티크 모나코’에 둥지를 튼 ‘바다’엔 이
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일반인도 크게 부담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우리 그릇들이 있다. 이 씨는 이 브랜드 설립을 주도했을
뿐 실제 운영은 아내 조현주 씨가 맡는다. 이 씨의 미국 유학생활 동안, 그리고 이번 인터뷰 내내 옆에서 묵묵히 도왔던 아내는
어쩌면 ‘이헌정 스타일’을 일구게 한 일등 공신인지도 모른다. 이 씨는 양평 작업실을 ‘캠프(Camp) A’, 바다 매장을 ‘캠프
B’라고 불렀다. 군사 작전용어 같은 어감 선택이 딱 그답다. 미래의 캠프 C와 캠프 D는 어느 곳이 될지. 그들의 여행,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