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자신만만한 ‘조민우 실장님’이 아니었다. SBS 탄현 라제작센터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주상욱(32)은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에서 보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개 한 번 숙이는 법 없이 뻣뻣하던 조 실장님은 기자들 앞에서는 농담하고 눈웃음치며 붙임성 있게 굴었다.
먹성도 좋았다. 기자들이 먹던 아몬드쿠키를 “맛있다”며 야금야금 뺏어먹더니 나중엔 몽땅 입에 털어 넣었다. 지난해 MBC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에서 팬들이 사온 어묵꼬치 15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강남 개발사를 다룬 ‘자이언트’에서 그가 연기하는 조민우는 비열하게 돈을 모아 정치를 하는 아버지(정보석 분)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1980∼1990년대 강남개발에 뛰어들면서 정직한 주인공 이강모(이범수)와 사사건건 부닥친다.
“한마디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죠. 강모같이 정의로운 인물과 싸우다 보니 수단 방법 가릴 여유가 없어요. 앞으로 강모의 동생 미주(황정음)와 연애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질 거예요. 미주는 진심으로 사랑해요. 정연이(박진희)도 정말 사랑했는데 제가 ‘까였죠’.”
돈과 권력의 결탁은 부실공사로 이어진다. 드라마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조민우로 대변되는 악인의 몰락을 그려낼 예정이다.
알고 보니 주상욱도 ‘강남 키드’였다. 5세 때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근처에서 살았다. 개발 전이어서 강남이 부자 동네 이미지를 얻기 이전이었다.
“어렸을 때 집 주변에는 주공아파트, 고속터미널만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건물이 하나둘 올라왔어요. 고 1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는데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주상욱은 그동안 드라마 ‘깍두기’, ‘춘자네 경사났네’, ‘그저 바라 보다가’에서 반듯한 부잣집 도련님 역으로 많이 나왔다. ‘선덕여왕’에서도 강직한 가야의 왕자 월야를 연기했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손예진의 착한 두 번째 남편 역을 맡았다. 조민우 같은 ‘재수 없는’ 악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매너 있는 남자, 젠틀한 실장님만 하니까 저도 지겨웠어요. 그렇다고 갑자기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올 수도 없고…. 그때 조민우 역 제의가 들어왔어요. 안할 이유가 없죠. 무엇보다 역할이 크잖아요? 하하.”
그에겐 ‘그저 바라 보다가’에 황정민, 김아중과 함께 주연급으로 출연했다가 회가 거듭할수록 비중이 줄었던 아픔이 있다. 그는 “두 스타에 치여서 발디딜 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제가 아무래도 두 분과 ‘급’이 다르니까요.”
‘자이언트’에는 욕조신이나 샤워신 등 드라마 전개상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조민우의 노출신이 많이 등장한다. 주상욱 스스로도 “작가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데 사실 걱정된다”며 쑥스러워했다.
“요즘 ‘몸짱’이다 ‘짐승남’이다 하잖아요? 사람들은 제 몸이 좋을 거라고 기대하는데 사실 시간이 없어서 오랫동안 운동을 못했어요. 그래서 부담이 돼요.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도 안 좋게 나오더라고요.”
올해 그는 ‘자이언트’ 말고도 외주 제작사의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과 영화 한 편을 더 찍었다. 가장 바빴던 5월 한 달간은 이동 중에 쪽잠을 잔 것을 빼면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러다가 쓰러지지 싶었는데 체력이 워낙 좋아선지 응급실 링거투혼은 하지 못했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는 드라마 ‘자이언트’ 촬영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출연 배우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자이언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우 주상욱도 마찬가지죠. 이 작품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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