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아이 손에서 피가 뚝뚝… 우물에 빠뜨려 기절하는 장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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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드라마속 아동폭력에 전문가 우려
“일상생활서 폭행에 둔감해질 수도”

KBS2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우물에 갇힌 연이의 모습. 연이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김유정은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우물 신을 찍다가 숨이 막히고 코에 물이 들어가 울었다”고 고백했다. 사진 제공 KBSi
KBS2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우물에 갇힌 연이의 모습. 연이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김유정은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우물 신을 찍다가 숨이 막히고 코에 물이 들어가 울었다”고 고백했다. 사진 제공 KBSi
KBS 2TV의 납량특집 월화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양반가의 어린 아씨 초옥(서신애 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정규 도령(이민호)이 집에서 부리던 구산댁의 딸 연이(김유정)에게 마음이 가 있는 걸 알고 크게 화낸다. 연이를 불러 뺨을 때린 걸로도 모자라 여종을 시켜 차가운 우물에 빠뜨린다. 10여 초간 물을 먹으며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연이는 끝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서서히 가라앉고 초옥은 섬뜩한 얼굴로 깔깔거린다. “죽는 순간까지 똑똑히 지켜 볼거야.”

가해자 초옥과 피해자 연이의 극 중 나이는 만 9세, 실제 연기자는 12세와 11세 어린이들이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배우들은 앞으로 간을 빼앗긴 채 처참하게 죽는 독한 연기까지 해내야 한다.

드라마 속 아역들이 감당해야 하는 폭력 장면이 갈수록 선정적이고 자극적이 돼 가고 있다. 예전에는 어린이가 학대당하거나 죽는 모습은 영상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금기는 영화계에서 일찌감치 깨졌다. 2003년 개봉작 ‘바람난 가족’과 ‘4인용 식탁’은 어린이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해 평단의 비난을 받았다.

요즘은 안방극장에서도 흉기로 찔리고 얻어맞는 아이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MBC 수목 드라마 ‘로드넘버원’에서 머슴의 아들 장우(주한하)와 주인집 딸 수연(김유정)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장우는 수연이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누드 스케치를 하다가 수연이 오빠에게 들키고, 오빠는 장우의 손을 흙이 잔뜩 묻은 낫으로 힘껏 내려찍는다. 카메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1세 남짓된 어린 소년의 손등에서 검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아동 학대 문제에 둔감해져서인지 이제는 이런 장면을 탓하는 시청자도 많지 않고 방송사는 도리어 문제의 장면을 홍보하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TV 드라마의 도를 넘은 아동 학대 묘사가 일상의 폭력 증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문제의 장면을 본) 사람들이 아이들을 해치는 게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일상의 폭력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 원장은 “영화는 내 의지로 보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기도 한다. 더구나 가족이 함께 보기 때문에 그 폐해는 영화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집단에게 폭력장면을 보여준 뒤 축구를 하게 하면 반칙이 더 증가하는데 이를 관찰학습 효과라고 한다”며 “폭력적인 드라마 장면은 부모의 뇌리에 잠재돼 있다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과도한 반응을 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지적했다. 윤 교수는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시청자의 분노를 배가하고 극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방송사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을 올리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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